렛허는 올해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 국제 성인용품 박람회 2025 (Shanghai International Adult Products Industry Expo, 이하 ‘성인용품 박람회’)를 다녀왔습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박람회답게 세계 각국의 성인용품 브랜드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였는데요. 올해 박람회의 키워드는 단연 ‘기술(Technology)’이었습니다. 이번 방문기에서는 바로 이 기술을 중심으로 2025년 성인용품 산업의 주요 트렌드를 짚어봅니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섹스토이를 지정 성별에 따라 ‘여성용’ ‘남성용’으로 구분합니다. 섹스토이 특성 상, 일부 제품은 지정 성별의 신체에 최적화된 방식의 오르가슴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TREND 1. 음성 인식부터 대화까지, AI와 결합한 섹스토이
이번 박람회에서 단연 눈길을 끈 기술은 대화형 AI 섹스토이였습니다. “진동 강도를 높여 줘” “패턴을 바꿔 줘” 같은 지시에 반응하는 섹스토이부터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캐릭터를 설정하고, 사용자와 대화를 주고받는 가상 파트너형 섹스토이도 등장했죠.
물론 아직은 대부분의 제품이 영어 혹은 중국어로만 서비스되고 있으며, 중국어 버전의 경우 현지 관련 정책상 성적 대화가 제한되어 있어 기본 명령어를 입출력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에 대해 한 브랜드 관계자는 렛허에 “영어를 시작으로 한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 버전을 준비 중이며, 각국 정책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성적 대화의 깊이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답니다.
TREND 2. 필로우 인형+바이브레이터의 결합, 편리와 윤리 사이
그 다음으로 소개할 기술은 필로우 인형과 바이브레이터의 결합이었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유니콘 등 귀여운 외형의 필로우 인형에 페니스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바이브레이터가 탑재된 제품으로, 전원을 켜면 바이브레이터가 발기하듯 올라오며 진동하더군요.
사용자는 인형을 안은 상태로 바이브레이터를 삽입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제품 본체의 버튼이나 전용 앱을 통해 진동 강도나 패턴을 조절할 수 있어요. 이 같은 디자인의 섹스토이는 소근육 사용에 제약이 있는 신체 장애인을 위한 보조 섹스토이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유사한 콘셉트의 장애인용 섹스토이가 기획된 적도 있고요(아쉽게도 상용화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윤리적 우려는 존재합니다. 인간 신체를 모사하는 리얼돌 수준은 아니더라도, 남성 성기의 대상화와 동물 형상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사용자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방식이 다소 안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TREND 3. 기술도, 디자인도 진화하는 남성 섹스토이
남성용 섹스토이는 쾌락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형태의 기구에서 스마트 디바이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나홀 분야에서는 진동 강도와 패턴을 제어할 수 있는 전자동 방식의 기기들이 대세를 이뤘습니다. 일부 제품은 게임기나 바이크의 손잡이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적용해 성적 만족에 오락적 요소를 더하기도 했고요. 또한, 이들 제품은 직관적인 조작 인터페이스와 실시간 배터리 확인이 가능한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성인용품을 헬스케어·셀프케어 디바이스로 재정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뚜렷했습니다.
TREND 4. 기술도, 디자인도 정체 중인 여성 섹스토이
반면, 여성용 섹스토이 시장에서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여전히 핑크, 베이지, 라벤더 등 파스텔 톤의 컬러와 꽃, 나비, 조개껍데기 같은 전형적 모티프를 반복하는 디자인이 대다수였거든요. 기능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여성 오르가슴의 핵심으로 통하는 클리토리스 흡입형 섹스토이에서 획기적인 기술을 선보인 브랜드나 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자극의 강도와 패턴은 유사한데 디자인만 조금씩 다르게 설계한 브랜드가 외형만 바뀐 경우가 많았죠.
이는 섹스토이를 즐기고 찾는 여성 수요층이 늘어남에도 ‘여성친화’를 오직 ‘예쁜 디자인(여성의 신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한 설계 없이)’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함을 시사합니다. 아주 납작하고 진부한 공식이죠.
이번 성인용품 박람회는 섹슈얼 웰니스 산업이 더 이상 ‘소비용 사치재’가 아니라 기술과 연결된 혁신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다만, 작년과 비교했을 때 여성용 섹스토이는 감성 중심 마케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반면, 남성용 섹스토이는 기능성, AI, 데이터 기반 설계 등으로 기술 고도화를 적용한 제품이 늘어난 것에 또 하나의 성별 격차를 체감한 점은 아쉬웠어요(물론 여성용 섹스토이 중에도 꾸준한 기술 개발로 신제품을 선보인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링크에서 해당 브랜드와의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어요).
한편으로는 ‘K-섹슈얼 웰니스’의 시대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세계 성인용품 시장은 중국, 유럽, 미국이 주도하면서 그들의 신체 및 인식, 생활 환경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포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용자들의 실제 욕구와 데이터를 한 K-테크 중심의 섹스토이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 영상손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