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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에게 요구되는 ‘강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갱년기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국 상담·심리치료 협회(British Association for 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BACP)가 50대 이상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갱년기에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여성의 90%가 이를 주변에 숨긴다고 답했습니다.
갱년기는 호르몬 변화로 인한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기존 관계의 해체, 돌봄 책임의 증가, 빈 둥지 증후군 등이 한꺼번에 겹치기 쉬운 시기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여성이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하지만, 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 결과 불면(59%), 체중 변화(43%), 사회적 모임 회피(38%), 친구 관계 단절(28%) 등 추가적인 어려움이 이어졌고, 58%는 과거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일에도 더 쉽게 불안하고 압도된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갱년기 여성들은 왜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지 못할까요? 조사에 따르면 타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44%), 스스로 ‘버텨야 한다’고 느껴서(45%),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27%)이 주요 이유로 꼽혔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강한 척하기(stiff upper lip) 문화였습니다(24%).
강한 척하기 문화는 ‘윗입술을 굳게 다문다’는 표현처럼 감정이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참는 태도를 뜻합니다. 힘들어도 약함을 보이지 않는 것이 성숙하다고 여기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침착함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으며, 개인의 문제를 주변에 털어놓는 일을 부담으로 느끼는 특성이죠.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정신 건강 문제를 개인의 인내심이나 의지의 문제로 축소시키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중년 여성의 경우, 갱년기 증상과 관계 변화, 돌봄 책임이 동시에 쏟아져도 “이 정도는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내면화하게 됩니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문제를 숨기는 이유들’ 역시 결국 이 강한 척하기 문화의 연장선에 놓여 있습니다. 중년 이후 여성에게 ‘강한 모성’이나 ‘끝까지 책임지는 역할’을 기대해온 한국 사회의 모성 신화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이 자신의 건강 문제를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가 약함이나 무책임으로 해석되는 한, 갱년기의 정신 건강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방치한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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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렛허 (info@leth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