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템플’에서는 주인공이 교육 시설에서 성기를 자주 긁는다는 이유로 보건 선생님으로부터 수면제를 투여받는 장면이 그려진다. 템플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정작 그녀가 성기를 긁은 건 요도염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실화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의 성적 행동을 불편하게만 생각한다.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포괄적 성교육 매뉴얼>을 제작하고 있는 김보람 센터장은 장애인의 성도 그들이 온전히 영위해야 할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Q 성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 4학년 때 성교육 관련 연수를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자원봉사 중이었던 공업고등학교에서 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선생님이 고민이 많았어요. 학생들이 성에 대한 궁금증, 의문을 나타낼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말이죠. 그래서 그분과 함께 성교육 연수를 들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저도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아니거든요. 우리 몸이나 관계에 대한, 이전에는 친구들과 나누기 어려웠던 것들을 배우는 과정이 새롭고 재밌었어요. 성이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그때 새삼 깨달았고요.
Q 특히 발달장애인 대상의 성교육에 주력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을 해야지’라고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대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비장애인 대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했는데 복지관에는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이 많이 찾아오거든요. 당시에 복지관 내 치료 교실을 이용하는 장애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 친구들도 성교육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2005년쯤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발달장애 학생들에게는 어디서도 성교육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Q 발달장애인 성교육을 시작한 뒤 반응은 어땠나요?
발달장애인 대상의 성교육 의뢰가 조금씩 늘어났어요. 다만 성폭력 예방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원했지요. 당시에는 비장애인 대상의 성교육도 성폭력을 방어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거든요. 발달장애인은 방어를 넘어 타인에게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해 달라는 요구까지 더해졌죠.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Q 발달장애인 보호자나 지도자가 ‘우리 아이가 자위를 못 하게 해달라’는 의뢰도 많다고 하던데…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아직은 불편함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런 시선은 당사자와 가족들을 위축되게 만들죠. 아이가 같은 행동을 해도 장애 아동 보호자는 ‘우리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떡하지?’를 먼저 걱정해요. 그런데 사람은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 수는 없어요. 대신 타인의 반응에 자기 행동을 깨닫고 소통하고 그렇게 관계를 배워가며 발전하는 거죠. 그런데 발달장애인에게는 이 과정이 허용되지 않아요. 자위도 마찬가지예요. 비장애인이 자위한다고 우리가 그걸 문제 행동으로 보나요? 일상에 저해가 되거나 신체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가 아니거든요. 심지어 발달장애인은 성기 주변을 긁거나 하의 안에 손을 넣어서 옷을 정리하기만 해도 주위에서 이걸 자위로 추측하고 통제하려고 해요.
Q 그렇죠.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의 성을 훨씬 더 불편하게 생각하죠.
장애인을 성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특히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인지능력에 차이가 있다 보니 상황을 이해하는 게 느리거나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을 어린아이처럼 대해요. 나이가 들고 몸이 커지고,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었는데도 그냥 ‘덩치 큰 아이’, ‘미숙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거예요. 발달장애인들이 성적 행동을 하거나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죠. 오랫동안 장애인 대상의 성교육이 ‘너희는 더 조심해야 해’ ‘우리가 보호해줄 테니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식으로만 진행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Q 특히 여성 장애인은 성의 주체가 아니라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죠. 실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발달장애 여성이 비장애 남성과 사랑할 권리’를 다룬 에피소드가 방영된 후 이를 비판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던 것처럼요.
기억나요. 당시 방송에서 주인공인 우영우, 이준호 커플과 다른 발달장애 여성, 비장애 남성의 관계가 대조적으로 그려졌는데요. 후자는 그루밍 성범죄로 볼 가능성이 충분한 관계였어요. 반면 이준호는 일상에서도, 연애에서도 우영우가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캐릭터였고요. 우리가 발달장애인과 관계를 맺는 비장애인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안전하고 이상적인 연애만 하기 쉽지 않아요.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잖아요. 여러 번의 연애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니까요. 그런데 그 과정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거예요.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은 안전한 사람, 허용된 사람하고만 연애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판단하는 걸까요? 저 역시도 드라마를 보고 고민이 많아졌어요.
Q 생각할수록 명확한 답을 내리기 힘든 문제인 것 같아요.
맞아요. 정답이 없는 문제죠.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어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제시하는 정보의 폭이 매우 좁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예전에 만난 한 발달장애 학생은 체격이 있는 여자 친구였는데요. 아주 작은 사이즈의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었어요.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할 텐데 참고 입고 다닌 거예요. 누군가 ‘여자는 브래지어를 입어야 한다’고만 가르쳤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장애 여성은 후크가 달린 브래지어 말고도 선택의 범위가 넓어요. 스포츠 브래지어도 있고 니플 패치도 있고, 때로는 입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죠. 장애 여성에게도 브래지어가 불편하다면 입지 않을 수 있고, 다른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정보와 대처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이런 정보는 전달하지 않아요. 발달장애 당사자도 취향이 있고,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에게는 의사소통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비장애인이 의사소통의 방법을 언어로만 한정하고 그 외의 방식은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Q 이런 고민을 반영해 제작하고 있는 것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포괄적 성교육 매뉴얼>이죠?
그렇습니다. 포괄적 성교육은 2018년 유네스코에서 제시한 국제 성교육 가이드예요. 발달장애인의 성교육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포괄적 성교육의 핵심은 ‘당사자의 주체성’이거든요. 비장애인 혹은 보호자의 입장에서 만든 정답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정보를 교육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이 공공장소에서 자위를 했다면, ‘공적 공간에서는 하면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청결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찾도록 도와줘야 해요. 스킨십에 관해서도 무조건 ‘만지면 안 된다’고 하기보다 상대와 친해지고 싶을 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소통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고요. 반대로 불편한 상황에서 거절하는 방법도 알려줘야 합니다. 성교육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결국 그들이 일상생활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포괄적 성교육의 방향성이죠.
Q 이 매뉴얼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요?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 홈페이지 자료실에 2021년 작성된 초안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이 초안으로 지난해 꾸준히 시범 교육을 했고요. 그 결과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까지 일부 내용을 보완해 하반기부터 전국에 배포할 예정입니다. 매뉴얼이 발행되면 필요한 곳에서 이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전국 워크숍 투어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Q 앞으로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계획하고 있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나요?
2021년에 장애 청소년 기자단 톡톡 프로젝트를 운영했어요. 발달 장애 청소년들이 서울 권역의 성문화센터를 방문해서 직접 취재하는 활동이었어요. 아이들이 우리 기대보다 더 잘 배우고 또 배운 내용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해석하더라고요. 2022년에는 자신들이 받은 성교육에 대한 느낌을 표현해보는 활동을 했고, 올해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아이들이 직접 데이트 방법을 찾아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해요. 부모님이나 특수교사가 아이들을 인솔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가고 싶은 데이트 장소를 정하고, 그곳이 식당이라면 먹고 싶은 것을 주문도 해보는 거죠. 성교육 전문가들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에 관한 언어나 표현을 코칭만 해주고요. 또 올해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하는 통합 월경 교육을 시작하려고 해요. 발달장애인이라고, 장애인들하고만 사는 게 아니니까요. 장애인들에게는 비장애인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께 섞이는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Q 앞으로 장애인의 성에 관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나요?
인간의 성은 장애 여부와는 관련 없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고 감각하는 분야예요. 그러니 성에 관해 논할 때 장애인을 다른 부류로 분리하지 않기를 바라요. 배려라는 표현도 불편해요. 저희는 비장애 학생들을 교육할 때 장애인 친구들의 행동을 무조건 이해하고 참으라고 가르치지 않아요. 맞는 건 맞는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면 됩니다. 비장애인도 사람마다 인지 능력이나 성향 면에서 차이가 있듯 장애인도 저마다 다른 특성, 성향을 가진 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박기동, 서울시립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
- 디자인박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