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Her SPEAK

섹스토이를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해요

2024-07-16

여러분은 성(性)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게 먼저 떠오르나요? 곧바로 야한 이미지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쩌면 생각하는 것조차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여기, 성을 학문으로써 바라보는 직업이 있습니다. 바로 성학자예요! 성학자는 정확히 성에 관해 어떤 일을 하는지, 우리가 잘 아는 성 교육자와는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지 않나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렛허가 세계 최대 섹슈얼 웰니스 기업 와우테크그룹에서 유저 리서치 책임을 맡고 있는 성학자를 만났습니다. Let Her SPEAK 세 번째 주인공, 엘리자베스 노이만을 소개할게요.

성학자(Sexologist)*라는 직업이 아직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 주세요.

기본적으로 성(性)을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성을 연구하는 직업은 아주 다양한데요. 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분화할 수 있어요. 의학 및 심리학적 관점에서 성을 연구하는 사람은 성 치료사(Sex Therapist), 교육적 관점에서 성을 다루는 사람은 성 교육자(Sex Educator)죠. 성학자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직업으로,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성을 연구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우리나라에서는 성학자, 성의학자, 성과학자, 성연구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대학에서 성 과학(Sexology)이라는 학문을 전공한 건가요?

맞아요. 하지만 독일에는 성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 한 곳뿐이었어요. 동독에 있는 작은 대학이죠.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는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원래 사회복지를 공부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몇 년 간 학교에 가서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을 가르쳤죠. 성 교육자로 일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정말 흥미를 느끼는 건 성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또 사람들을 어떻게 행동하게 만드는지 그 원리를 탐구하는 일이라는 사실 말이에요.

성 교육자와 성학자의 차이를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성교육자는 우리의 신체 중 특정 부위를 어떻게 부르는지, 임신은 어떻게 하는지, 성관계 전에 동의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춘기 동안 우리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등 사람들이 성에 관해 궁금해하는 모든 정보를 제공합니다. 성학자는 성에 대한 정보보다는 사회 안에서의 성에 더 초점을 맞춰요. 이를테면 특정 성적 행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퀴어 청소년이 겪는 현실은 어떤지 등의 주제를 깊이 이해하고 논의하기 위해 연구하죠.

 

앞서 말했듯 한국에서 성학자는 아직 낯선 직업인데요. 독일에서의 인식은 어떤가요?

여기서도 잘 알려진 직업은 아닙니다.(웃음)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면 다들 놀라워해요. 그렇지만 제가 사는 베를린은 매우 개방적인 도시라 성학자라고 소개하면 ‘이런 직업이 있다니, 멋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매우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저와 더 많이 대화하려고 하죠.

 

사회 속의 성을 연구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날 텐데요.

기쁘고 보람찬 일이에요. 연구를 위해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저와의 인터뷰가 자신에게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 말해주거든요. 그전까지 성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나눈 적이 없었다면서요. 사람들이 성에 관한 자기 생각이나 이야기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이 성학자로서 가장 뿌듯한 일 중 하나예요.

지금은 글로벌 섹슈얼 웰니스 기업 와우테크그룹에 속해 있죠.

성과학으로 석사 과정을 밟던 중, 와우테크그룹에서 성과학 전공자를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당시 인턴으로 입사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그때는 회사 규모도 아주 작고, 직원도 여성들만 있었는데요. 저는 그중 25번째 직원이었어요.(웃음) 와우테크그룹에서 섹슈얼 웰니스 제품을 연구하고, 또 시장을 조사하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학업을 마친 후에도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성학자로서 와우테크그룹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현재 와우테크그룹의 유저 리서치 책임자를 맡고 있어요. 제품 개발진과 사용자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하죠. 즉, 제품 개발의 모든 과정에서 사용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요. 먼저 고객이 어떤 콘셉트를 선호하는지, 제품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확인합니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테스터들에게 프로토타입을 나눠주고 우리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는지 확인해요. 그리고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반복하죠. 이밖에 사내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시간씩 와우테크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여성의 쾌락, 섹스토이의 역사, 퀴어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하는데요. 이 강의를 통해 영업 담당자, 마케팅 담당자들은 섹슈얼 웰니스 분야의 최신 연구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세계 최대 섹스토이 회사의 테스트 과정이 궁금합니다. 테스터의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제품 개발 시점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요.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처음부터 개발하는 경우, 프로토타입을 10~15개 정도 만들어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기도 하고, 질적 연구에서는 이 정도 규모만으로도 대상 제품의 장단점, 가능성과 위험성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소규모 테스트로 얻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하는데요. 저는 가능한 많은 기능을 추가하고자 요청하고,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을 알려주죠. 이런 조율 끝에 제품이 개선되면 이제 테스터 규모를 50~100명으로 늘립니다. 그리고 사용자 설문을 통해 제품의 성능과 품질이 우리의 기준에 맞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이때 사용자 만족도가 최소 90%를 달성할 때 제품 출시를 결정합니다. 현재 와우테크그룹의 글로벌 테스터 규모는 약 10,000명입니다. 주로 미국, 독일, 영국 출신의 테스터가 많아요.

 

개발 과정에 참여한 제품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정말 많은 제품에 참여했는데요. 지금 생각나는 건 위바이브의 싱크 O입니다. C-타입 바이브레이터를 개발하기까지, 섹스토이는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노력했어요. 이를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또 좋아하는지 연구를 거듭했죠. 싱크 O는 기존 C-타입 바이브레이터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만족감을 선사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에요. 여성에게 삽입되는 부분이 동그란 링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질 안쪽에 들어갔을 때 토이가 제자리에 안정적으로 고정되도록 역할을 하는 덕분에 섹스 중 착용감이 훨씬 좋다는 후기가 많았어요. 또 여성 사용자만 아니라 남성 사용자도 싱크 O의 만족도가 더 좋았고요. 2023년 7월 진행된 싱크 O 대규모 리서치 결과, 싱크 O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힌 테스터가 95%나 됐어요. 참고로, 싱크 O를 사용할 때 커플들이 가장 선호하는 체위는 정상위였어요. 2위는 후배위가 차지했고요. 흥미로운 점은 사용자의 3분의 1이 싱크 O를 혼자서도 즐겼다는 겁니다. 웨어러블 섹스토이처럼 속옷 안에 착용하고 밖을 돌아다녔다고 하네요.

 

C-타입 바이브레이터는 관계 도중 함께 삽입해야 한다는 편견을 깨는 결과네요.

우리 머릿속에는 항상 섹스가 어떤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대본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섹스토이를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해요. 싱크 O 역시 파트너와 함께 연결되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가슴이나 목덜미, 혹은 또 다른 성감대를 애무하는 데 활용해도 좋아요.

‘섹슈얼 웰니스’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섹스토이 역시 성 건강, 성생활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는데요. 섹스토이가 사람들의 성생활을 어떻게 개선하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어요. 내가 내 몸의 어떤 곳에서 더 많은 쾌감을 느끼는지 발견하는 일은 삶을 크게 바꾸는 아주 강력한 경험입니다. 성적 자각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지거든요. 또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알 때, 파트너와 소통하는 것도 더 쉬워지고요. 만약 평소 파트너와 섹스에 관해 이야기하고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을 꺼내기 힘들다면 섹스토이가 물꼬를 트는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셀프 플레저가 우리에게 주는 이점이 분명히 있는데요. 스트레스 해소, 면역 체계와 수면의 질 개선, 심리적인 이완과 성욕 증진 등 몸과 마음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죠.

 

‘섹스토이가 파트너와의 성적인 대화에 물꼬를 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흥미로운데요. 한국은 연인이나 부부라 할지라도 성적인 주제의 대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 연구 결과, 사람들은 ‘당신은 내 클리토리스를 충분히 만지지 않아’라고 말하는 거보다 ‘나 이런 거 정말 해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게 더 쉽다고 느껴요.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면 클리토리스 자극을 도와줄 섹스토이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겠죠. 파트너와 성적인 대화를 하거나 원하는 것을 조율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파트너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그리고 파트너가 무엇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지 먼저 파악한 다음 섹스토이와 같은 도구를 제안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한결 쉬울 거예요.

 

한편으로 ‘섹스토이에게 내 자리를 빼앗기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섹스토이에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관점을 바꿔보세요. 파트너가 나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 위한 무언가를 준비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럼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섹스’란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 이상의 행위라는 점이에요. 섹스토이는 쾌락과 오르가슴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정서적 연결’은 충족할 수 없어요. 섹스토이는 절대 해줄 수 없는 것을 파트너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만일 그래도 섹스토이가 자신을 대체할까 봐 걱정된다면 반대로 자신이 파트너를 그만큼 쉽게 대체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여성의 성적 해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섹스를 많이 하거나 오르가슴을 많이 느끼거나 혹은 섹스토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을 뜻하지 않아요. 내 몸에 대해,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이 곧 성적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요.

여성이기 때문에 특정 방식으로 행동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요.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큰 압박을 주지 말고, 내면에 변화하고 싶은 욕구나 소망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그 길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하기를 바랍니다.

  • 에디터
    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
    엘리자베스 노이만, 와우테크그룹 제공
  • 디자인
    박유정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