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텀블벅에서는 유방암 생존자의 성적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에로티카 〈워시 미(Wash Me)〉가 펀딩에 성공했습니다. 해외 여성향·윤리적 에로티카 선구자 에리카 러스트 필름 작품인데요, 무엇보다 여성의 시선으로 만든 에로티카에 한국의 여성 관객들이 응답했다는 데서 의미 있는 성과입니다. 여성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성인 콘텐츠를 선택하고, 이야기와 감정이 있는 에로티카를 보고 싶어 한다는 수요를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죠.
이번 펀딩 프로젝트는 에리카 러스트 필름의 한국 공식 배급사 YMK유니버스 김양미 대표가 이끌었습니다. 케이블TV VOD 서비스 회사에서 여성 이용자에게 주어진 성인 콘텐츠의 선택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확인한 그는 회사를 나와 퇴직금으로 여성향·윤리적 에로티카 수입에 나섰습니다. 이제는 해외의 작품성을 겸비한 에로티카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서 나아가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고, 국산 윤리적 에로티카를 직접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Let Her SPEAK의 아홉 번째 주인공 김양미 대표를 만나 에리카 러스트 필름이 한국에 오기까지의 여정과 아름다운 에로티카를 통해 바꾸고 싶은 성문화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Q.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이런 질문 오랜만이네요.(웃음) 저는 나답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여성을, 그리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고요. 또, 나중에는 귀엽고 엉뚱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Q.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요?
제 이름을 딴 YMK유니버스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치유를 중심으로 한 오감 기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친환경 향기 제품을 개발하고 있고, 허브 농장도 직접 운영 중이죠. 비료에 의존하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토종 식물과 허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치유’라는 가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경험한 치유의 여정을 하나의 브랜드이자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 축이 바로 에리카 러스트 필름을 한국에 공식 수입하고 소개하는 일이에요.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됩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돌볼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여정이거든요.
Q. 에리카 러스트 필름도 치유의 여정을 나누는 일의 일부라고 표현했는데요. 성인 콘텐츠, 그것도 여성향·윤리적 포르노를 한국에 소개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그와 맞닿아 있었나요?
맞아요. 시작은 5년 전 케이블TV VOD 서비스 회사에서 배급 팀장으로 일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성인 콘텐츠 매출이 정말 높았어요.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여성들의 이용률도 생각보다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여성의 관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는 거의 없었어요. 무엇을 봐야 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환경이었던 거죠.
저도 기존 남성 중심의 성인 콘텐츠를 처음 봤을 때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저는 〈인간중독〉이나 〈방자전〉처럼 감정선과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감정이 쌓이고 관계가 만들어진 뒤 이어지는 섹스신에 더 몰입하는 편인데, 기존 콘텐츠는 자극과 배설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여성을 위한 작품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해외 레이블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미국, 영국…. 그러다 에리카 러스트 필름을 만난 순간 “이거다” 싶었죠.
섹스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그리는 작품은 많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욕망과 삶,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함께 담아내는 작품은 에리카 러스트 필름이 독보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텀블벅에서 소개한 〈워시 미〉만 봐도 그렇잖아요. 유방암 생존자의 성적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를 누가 만들겠어요. 저는 그런 작품이야말로 한국 여성들에게 꼭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결국 직접 에리카 러스트 필름의 한국 공식 배급을 맡고 있습니다. 회사를 나와 혼자 시작하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에리카 러스트 필름을 처음 발견했을 때, 회사에서 제 주도 아래 여성향 OTT를 출범시키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재미있는 콘텐츠, 야한 콘텐츠를 여성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실제로 작품 수급도 끝냈고 앱 개발도 완료했는데 회사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됐습니다. 너무 아까운 프로젝트라 계속 설득했지만 결국 안 됐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그냥 내가 하자” 사직서를 내고 퇴직금으로 에리카 러스트 필름 수입을 시작한 게 오늘까지 이어졌네요.
Q. 한국에 공식 수입하기까지는 에리카 러스트 필름을 직접 설득하는 과정도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계약을 성사시켰나요?
우선 에리카 러스트 필름 측에 메일을 보냈어요. 저는 메일을 정말 정성스럽게 쓰는 편인데요. 진심은 결국 통한다고 믿거든요. 단순히 사업을 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왜 에리카 러스트 필름을 좋아하는지, 왜 이 작품들을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은지, 어떤 철학과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진솔하게 설명했어요.
특히 기존 성인영화처럼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들여와 단순히 유통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를 직접 보고 신중하게 셀렉해 에리카 러스트라는 레이블 자체를 한국에 브랜딩하고 알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단순히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욕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메시지를 한국에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한 단계 더 건강한 방향으로 넓혀가고 싶다는 취지도 함께 전달했죠.
그 부분을 에리카 러스트 필름 측에서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에리카 러스트 측 역시 한국 시장에 대해 궁금해했고, 단순한 콘텐츠 유통이 아니라 레이블의 철학과 가치를 함께 브랜딩하려는 방향에 공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방향성을 확인하면서 한국 시장 진출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었고, 공식 계약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Q. 성인 콘텐츠이다 보니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유통하는 과정도 어려웠겠습니다.
와, 포스터 심의하다가 환장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반려, 반려, 반려, 또 반려. 여성의 몸이 드러나서도 안 되고, 남성이 여성의 목에 키스하는 장면도 안 되고, 두 사람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도 안 되고…. 결국 에리카 러스트 필름에서 제공한 멋진 포스터들은 국내 심의 기준에 맞지 않아 모두 반려됐어요.
그런데 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 여성의 가슴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다른 성인물 포스터는 통과되는데, 에리카 러스트 필름처럼 훨씬 아티스틱한 이미지는 계속 반려된다는 점이었어요. 기준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결국에는 작품을 들여올 때마다 제가 직접 디자인을 다시 하고 있어요. 레이블에서 받은 스틸컷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를 고르고,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해 국내 심의 기준에 맞는 디자인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AI가 없었다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웃음)
Q. 지금 한국에서 에리카 러스트 필름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우선 현재로서는 LG유플러스TV에서 서비스 중이에요. 올해 3월에 론칭했는데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다만 요즘에는 TV보다 모바일과 OTT를 통해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이 더 많다 보니, 다른 플랫폼으로도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에 〈워시 미〉라는 작품을 텀블벅에서 펀딩한 것도 그런 이유였고요. 여름에는 또 다른 작품의 펀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자체적인 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어요.

Q. 두 번째 펀딩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이렌 송(Siren Son)>이라고, 제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처음 보자마자 “이건 아트(art)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죠. 인스타그램 계정에 미리보기 영상을 조금씩 올리기도 했는데요. 살짝 스포하자면 푸른 바다에서 펼쳐지는 판타지적인 이야기입니다.
Q.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작품 중에 ‘최애’를 추천해준다면요?
<섹스 앤 센서빌리티(Sex & Sensibility)>라는 작품을 정말 좋아해요. 한국어 제목은 <젖어든 페이지>입니다. 정말 고민해서 지은 제목인데요. 이 작품은 주인공이 로맨스 소설을 읽다가 잠드는데, 꿈속에서 자신만의 성적 판타지를 경험하는 내용이에요. 남자 배우도 정말 멋있고, 작품 자체도 좋아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Q. 자체적으로 기획 중인 플랫폼도 궁금해요.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때부터 여성향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어요. 하지만 함부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죠. 저는 지는 싸움은 안 하거든요. 이 플랫폼이 오래 버틸 수 있는 비즈니스 구조를 먼저 만든 뒤, 웹사이트 기반의 플랫폼으로 시작할 계획입니다.
유료 구독자에게 에리카 러스트 필름의 에로티카를 뉴스레터 형식으로 소개하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어요. 콘텐츠 심의와 자막 작업까지 모두 마쳤으니, 이제는 이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차례입니다.
Q. 한국의 ‘에리카 러스트 필름’처럼 여성향 포르노를 직접 제작해 볼 계획도 있나요?
욕심 있어요. VOD 회사에서 배급 팀장으로 일할 때 한국의 에로 영화 촬영장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직접 가서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오래된 펜션을 빌려 배우들이 하루 종일 머물며 몇 시간 동안 작품을 연달아 찍어내는데, 제작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반면, 에리카 러스트 필름은 여성향이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윤리적인 제작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레이블입니다. 실제로 에리카 러스트 필름의 메이킹 영상을 보면 배우와 스태프들이 서로 존중하며 즐겁게 촬영하는 분위기가 느껴져요.
저도 언젠가는 모두가 존중받고 기분 좋게 촬영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아름다운 에로티카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여성이 성적으로 해방된다는 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진짜 해방은 여성만 바뀐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만 계몽되고 깨어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 인구의 절반은 남성이고, 결국 모두가 함께 바뀌어야 진짜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나는 해방됐어”라고 선언한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에리카 러스트 필름도 단순히 ‘여성향 포르노’라고만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기존 남성 중심의 콘텐츠를 불편하게 느끼는 남성도 분명 있을 것이고, 성별과 관계없이 이야기와 감정에 공감하며 섹스를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오히려 저는 ‘커플이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라는 표현이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헤테로 커플이든, 레즈비언 커플이든, 게이 커플이든 성적 지향은 중요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작품을 보고, 서로의 욕망을 이해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과정 자체가 성적 해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옳다고 믿는 길이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에리카 러스트 필름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도 결국 그런 믿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일이 단순히 콘텐츠를 유통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서로의 욕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문화를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물론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요망진스튜디오, YMK유니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