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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만큼 다양한 성교통의 원인

2023-01-26

성교통 때문에 더는 관계가 즐겁지 않다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다음의 내용을 확인해 보자.

성교통 이외에도 다른 증상이 있나요?

성교통은 질, 자궁, 요도, 방광 등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성교통이 나타난 시점을 기준으로 몸에 나타난 변화를 체크해야 한다. 분비물이 평소와 다르다면 질염이 의심된다. 분비물이 하얗거나 회색이라면 가드넬라 질염(세균성 질염), 치즈처럼 흰색 분비물이 덩어리져 나온다면 칸디다 질염, 분비물에 악취가 나고 음부가 가렵다면 트리코모나스 질염일 수 있다. 하지만 분비물만으로 질염 여부와 그 원인균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반드시 병원 진료를 통해 정확히 진단을 받아야 한다.

생리의 상태는 어떤가? 생리량이 급격히 늘었다면 자궁 질환을 의심할 만하다. 여기에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이전에 비해 생리통이 극심하고 골반통이 지속된다면 자궁근종,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자궁선근증 등의 자궁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관계 시 방광이 자극받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 소변을 볼 때도 통증을 느끼거나 피가 섞인 소변을 보는 등의 증상이 있다면 요도염이나 방광염일 수 있다.

 

골반저근이 약한가요?

골반저근은 자궁을 받치며 질 입구를 둘러싼 근육으로, 오르가슴을 느낄 때 이 골반저근이 불수의적인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소변이나 대변을 참거나 섹스 중 ‘조인다’고 할 때 바로 이 골반저근을 수축시키는 것이다. 오르가슴 때도 쓰이는 근육이므로 골반저근의 힘이 부족하면 오르가슴을 느끼기 힘들다. 또한 골반저근의 긴장도가 지나치게 올라가면 근육이 움츠러든 채 제때 이완하지 못한다. 마치 다리에 쥐가 난 것처럼 근육이 경련하면서 관계 시 삽입이 어렵거나 고통스럽게 된다.

 

출산한 적이 있나요?

해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49%가 출산 후 관계에서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만큼 출산 경험이 성교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첫째는 호르몬의 변화다.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은 프로락틴 수치가 높아지는데, 이것이 질 점막을 얇게 만드는 탓이다. 질 벽이 얇아지면 질 내부가 건조해지면서 약해진다. 이 때문에 관계 시에도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 둘째는 심리적인 문제다. 산후 우울증이나 육아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나타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안, 긴장도가 높아지고 통증 역치가 낮아지는 것으로, 사소한 자극에도 큰 고통을 느낀다. 자연히 관계 시에도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 분만 시 회음부를 절개한 여성의 경우, 상처가 아물어도 관계 시 해당 부위가 아플 수 있다.

 

갱년기가 시작됐나요?

성교통은 갱년기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이다. 역시 원인은 호르몬의 변화다. 이 시기 여성의 몸에서는 여성호르몬의 수치가 급격히 감소한다. 이 같은 변화는 질 내부의 환경도 바꾸는데 질 점막이 얇아지고 주름이 줄어들며, 분비물이 감소하면서 질 내부가 건조해진다. 질 내부의 균형이 깨지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도 높아진다. 이때 만성적으로 갖게 되는 질염을 위축성 질염이라고 한다. 호르몬 변화로 질 내부가 건조해진 데다 위축성 질염까지 생긴다면, 이 모든 요인이 종합적으로 성교통을 유발하는 셈이다.

 

경구피임약을 오래 먹었나요?

성생활을 하는 현대 여성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경구피임약이다. 그런데 경구피임약도 휴약기 없이 오래 복용하면 부작용으로 성교통을 얻을 수 있다. 국제 학술지 <OBSTETRICS & GYNECOLOGY>에 실린 한 논문에서는 저용량 에스트로겐 알약을 장기간 복용한 여성이 전정염 신드롬(전정부에 나타나는 염증/비염증성 통증을 포괄하는 개념)을 가진 여성보다 성교통으로 고통받는 빈도가 높다고 언급한다. 특히 경구피임약의 영향으로 생리 주기가 짧아지고 생리량이 줄어드는 것이 질 분비물의 감소로 이어지며, 이것이 성교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심리적인 문제를 갖고 있나요?

성교통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심리적인 문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면 신체적으로도 긴장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골반저근’ 항목에서 설명했듯 몸이 긴장하면 골반저근이 제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지 못하므로 삽입이 힘들고 관계도 고통스러워진다. 또한 앞서 언급한 산후 우울증으로 성교통이 생기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울할수록 긴장도가 높아지고 통증 역치가 낮아지는 게 원인이다.

이 밖에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성교통에 영향을 미친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성적으로 보수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 성과 관련한 부정적인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 등이 그 예이다. 이 같은 인식을 가진 여성들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감이 크기 때문에 아예 삽입조차 불가능한 질 경련증이 생길 수도 있다.

 

관계 시 전희의 시간이 부족한가요?

여성의 몸은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질액(Vaginal discharge, 흔히 애액으로 부르는 것)을 분비한다. 이것이 질 내부를 촉촉하게 만들어 삽입 관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질액이라는 것이 섹스에 돌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곧바로, 양껏 나오는 게 아니다. 질액이 천연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분비되려면 전희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러나 삽입 전 애무의 과정이 짧았거나 혹은 여성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질액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삽입 후 이물감이나 불편감이 커진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관계를 고통스럽고 불편한 행위로 인식하게 돼 결국 흥분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

 

파트너가 너무 깊게 삽입하나요?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관계는 고통과 상처를 남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나치게 깊은 삽입이다. 여성의 질은 흥분하면 길이가 늘어난다. 정확히는 질 벽의 주름들이 펼쳐지면서 내부 공간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름이 펼쳐질 만큼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성이 성기 뿌리까지 삽입할 기세로 몰아붙인다면 아플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후배위 자세로 거친 플레이를 하는 경우다.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자궁과 장, 방광을 자극할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인데, 게다가 이 자세에서 여성의 회음부 6시 방향이 찢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확률도 높으므로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모든 게 정상인데도 고통스럽다고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또 파트너와의 관계 방식에서도 위에 언급된 내용 중 해당하는 문제가 없다면? 이런 경우일 수 있다.

성교통을 경험한 여성 중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는 음부통(Vulvodynia)일 가능성이 높다. 음부통이란 외음부에 나타나는 통증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 증상을 가진 여성 중 거의 절반은 염증처럼 뚜렷한 신체적 원인이 없는데도 통증을 느낀다.

이것도 아니라면 드물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의심해볼 수도 있다. 남성의 정액 속 단백질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거나 평소 합성 소재로 만들어진 속옷을 착용하거나, 속옷을 세탁할 때 사용한 세제 성분 등에 대한 알레르기가 음부를 예민하게 만들어 성교통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백혜경

전문의(백혜경 부부의원 원장)

미국 킨제이 연구소에서 성의학을 연수했으며, 하버드대 의대 케임브리지병원 부부 및 가족 치료 센터에서 수련 과정을 밟고 보스턴대학교 불안장애 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성별 불문 다양한 성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 치료하는 성의학 전문가로 국내를 대표한다.

  • 에디터
    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참고
    <질 건강 매뉴얼>(제니퍼 건터 저, 조은아 역)
  • <질 좋은 책>(정수연) <관계 디자인>(박소영)
  • John F. Steege, MD, and Denniz A. Zolnoun, MD, MPH, <Evaluation and Treatment of Dyspareunia>,
  • Obstet Gynecol. 2009 May
  • Buhling KJ, Schmidt S, Robinson JN, Klapp C, Siebert G, Dudenhausen JW,
  • <Rate of dyspareunia after delivery in primiparae according to mode of delivery?>
  • Eur J Obstet Gynecol Reprod Biol. 2006 Jan
  • 일러스트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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