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키스를 잘해야 다음 스킨십도 수월하다.
타이밍이 8할
대개 ‘인생 키스’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장소, 환경, 시기와 같은 것들을 꼽는다. 턱을 괴고 몽롱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근처 선술집, 해수욕장 파라솔, 갓 눈이 내리던 초겨울, 습도가 높았던 한여름, 고2 수학여행, 해외 어학연수와 같은 키워드를 나열하곤 한다.
반면 혀나 감긴 방향, 입술을 덮은 순서와 같은 것들은 비교적 기억이 흐릿하다. 짧게 후술되거나 아예 생략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뿌리깊은 유교걸&유교보이라 그럴까? 아니다. 키스는 ‘타이밍’이 8할이기 때문이다.
키스는 ‘어떻게’가 아닌 ‘언제’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언제’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만 갖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관찰될 수 있다. 데이트 중 상대가 가장 로맨틱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최고의 타이밍에 키스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악의 타이밍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반절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덥거나 추운, 너무 취했거나 속이 더부룩한, 연봉협상이나 기말고사 과제를 앞두고 있어 긴장이나 불안을 겪고 있는 와중에 입을 맞추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려심을 갖고 상대의 심신을 관찰해보자. 하나라도 맘에 걸린다면 지금 우선적으로 시도해야 할 것은 키스가 아닌 대화와 휴식이다.
크레센도
키스는 크레센도(Crescendo)다. 서서히 세게 나아가는 게 좋다. 그러나 초심자는 대개 키스 중 쉽게 흥분한다. 갑자기 박자가 빨라지거나 세기가 강해지는 실수를 한다. 비수면 내시경이 떠오를 정도로 입이 크게 벌리고, 혀가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지며, 화재 진압을 방불케 하는 침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러면 곤란하다.
저런 키스가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섹스 중 상호 쾌감이 극에 달하는 순간에는 위와 같은 격정적인 키스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맥락과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다. 특히나 갓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려는 연인이라면 더더욱 페이스를 조절하여 부드럽고 천천히 키스해야 한다. (K공중파 수목드라마 13회차쯤 등장하는 주연들의 키스 강도를 권장한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천천히 부드럽게 입을 맞추자. 편안하게 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살며시 혀를 나누자. 속도가 치닫거나 느려진다 싶으면 입을 떼고 상대와 눈을 맞춰도 괜찮다. 키스하는 도중 손을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상대의 손을 지긋이 잡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을 추천한다.
키스해도 될까?
잘 안다. 키스 타이밍을 살피고 재는 것, 페이스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속도와 세기로 입을 맞추는 것. 모두 연애 경험이 없는 초심자에게 어려운 일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실수할 게 걱정된다면 정면으로 돌파하자.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평소 어떤 곳에서 데이트하기를 좋아하는지, 요새 고민은 없는지 물어보자. 더 나아가 지금 손을 포개도 될지, 입을 맞춰도 될지, 혹시 내가 너무 빠르거나 세게 키스하고 있는 건 아닌지 떨리는 마음을 담아 물어보자.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명시적 질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섹시하다. 연애 경험이 많다는 근거로 자기 멋대로 키스하는 사람보다 어설프고 쑥스럽지만 사려 깊은 키스를 하는 사람이 백배천배 낫다.
렛허 성상담소에 질문을 건넸듯, 입을 맞추기 전에 연인이 될 사람에게 용기를 머금고 질문을 건네자. 키스 전의 그 문답만큼 설레고 아름다운 게 따로 있을까? 올 봄, 당신의 배려심과 평정심을 바탕으로 ‘인생 키스’가 피어오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p.s- 양치, 가글, 면도는 기본이다.
오럴수가
섹스 칼럼니스트
글 보부상. 섹슈얼 헬스케어 브랜드 EVE의 브랜드 커뮤니케이터. 연간 누적 조회수 50만에 달하는 섹스 칼럼을 연재한 경력이 있는 섹스 칼럼니스트.
- 에디터김민지 (minzi@lether.co.kr)
- 글오럴수가(섹스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이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