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과 맥킨지건강연구소(MH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학계는 여성의 90%가 경험하는 생리전증후군(월경전증후군 Premenstrual syndrome, PMS)보다 남성 중에서도 약 19%에게만 찾아오는 발기부전 연구를 5배나 더 많이 했어요.(2015년 기준) 질병이나 신약을 개발할 때마다 임상 실험에서 여성이 배제되어 온 역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길고요. 심지어 의대생들이 배우는 산부인과 교과서에는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증의 원인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고만 기술되어 있다는데요.
이러한 현실에 의문을 품고 여성질환을 파고든 의사가 있습니다. Let Her SPEAK의 두 번째 주인공, 조현희 청담산부인과의원 원장이에요. 자기 병의 원인을 묻는 환자에게 의사조차 명확한 답을 내려줄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연구를 시작한 조현희 원장은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이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을 알고 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도록, 현대사회를 점령해 버린 환경호르몬을 국가, 더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관심을 두고 해결하도록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이라는 책을 펴냈어요. 이 책을 읽으면 환경호르몬이 어떻게 인간의 몸에 들어오는지, 특히 여성에게 더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지, 화장품부터 생리대, 음식까지 일상에서 주의해야 하는 환경호르몬은 무엇인지, 환경호르몬이 유발하는 여성질환과 삶에서 환경호르몬을 덜어내기 위한 방법 등을 알 수 있어요. 내 몸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누군가는 ‘유난이다’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조현희 원장은 생각합니다.
“자궁도 없는 사람들이 뭘 알겠어?”
축하합니다.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을 2000년대 초반부터 구상했다고 들었는데, 드디어 책으로 출간됐네요.
오랫동안 상상 속에 존재하던 책이 현실 세계로 뚝 떨어진 느낌이에요. 무척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환경호르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원래는 이북 출간을 목표로 했다고요?
맞습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읽을 수 있고, 또 종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이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니 생각만큼 반응이 오지 않더라고요. 아직은 이북이란 형태에 장벽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고민했어요. ‘종이책을 꼭 만들어야 할까? 지구에 쓰레기를 보태는 일은 아닐까? 내 책이 나무를 써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있는 공공도서관을 들렀는데요. 그날따라 책들이 잔뜩 꽂힌 서가가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내 책도 여기에 꽂아두고 싶다!’ 책의 신(god of book)의 부름을 받은 거죠. ‘그래, 내가 죽어도 책은 남겠지. 누군가는 이 책으로 도움을 받겠지. 그럼 되는 것 아니겠어!’ 그렇게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이 종이책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그간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쓴 점이 있다면요?
제가 담고자 하는 내용을, 의료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배경 지식이 없는 환자들에게 질병이나 건강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의료진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진료 시간에 환자들을 만날 때도 고민하는 부분이고요.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을 쓸 때는 평소에 학회에서 발표할 때 사용하는 방법을 활용했어요. 알리고 싶은 내용을 쭉 나열한 다음 비슷한 내용끼리 묶고, 앞에 것을 보고 나서 뒤에 것을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후를 결정해 구성하는 방식이죠. 그래서 책의 1장에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몸 안에 환경호르몬이 들어오는 경로, 환경호르몬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담았습니다. 2장에는 환경호르몬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여성질환에 관해 자세하게 쓰면서 산부인과 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도 넣었습니다. 마지막 3장에서는 바디버든(Body burden)*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썼습니다.
*몸에 쌓인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의 총량을 뜻한다.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에 따르면 최근에는 몸에 쌓인 환경호르몬을 덜어내는 것을 바디버든이라고 부른다
책을 읽고 막연히 ‘나쁜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환경호르몬을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일상에서 부딪히는 환경호르몬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것도 체감했어요. 바디버든을 시작할 엄두가 안 날 만큼요. 일상에서 바디버든을 실천하는 팁이 있을까요?
우선 쉬운 것부터 시작하세요. 예를 들면, 샴푸나 린스를 사용하지 않는 거죠. 샴푸 대신 비누, 린스 대신 식초, 주방 수세미 대신 천연 수세미, 주방 세제 대신 설거지 비누, 물티슈 대신 손수건 등 환경호르몬이 적은 대체품을 찾아 쓰는 겁니다. 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처음부터 완전한 자연식이나 채식을 하면 좋겠지만, 식습관을 대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신 비덩주의*부터 시작해 차츰 반경을 넓혀 보세요. 또 패스트 패션을 멀리하거나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는 것 역시 소소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바디버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갑을 열기 전에 내가 내 소중한 돈으로 환경호르몬을 사는 건 아닌지, 내 소비가 세상에 환경호르몬을 더하는 행동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바디버든에 도움이 될 거예요.
*한국에서 시작한 채식주의의 일종. 덩어리 고기는 먹지 않되, 육수 등은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식에는 동물성 재료를 활용한 음식이 많아 시작된 방법이다.
한편으로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쓰기 시작한 텀블러마저 환경호르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 받기도 했는데요. ‘친환경’으로 마케팅되는 물건들이나 음식들 중 진짜 ‘친환경’을 가려내는 것도 바디버든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겠더라고요.
기업이나 단체에서 실제로는 환경보호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친환경이라고 포장하는 것을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고 하는데요. 인간이 순수한 의미에서 친환경으로 살려면 조선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는 순수하게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덜 환경 파괴적인’ 선택이 있을 뿐이지요. 소비자가 잘 몰라서 그냥 사용하는 것도 있고, 알면서도 편리성이나 경제성 때문에 사용하는 것도 있을 텐데요. 조금이나마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고르려면 항상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제품 광고나 기업의 설명 문구를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스스로 확인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아요.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 그것이 환경 친화적인 삶을 사는 첫 걸음입니다.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모두가 환경호르몬에 관심을 갖고 바디버든을 해내기를 바라는 건 일차적인 목표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이제 환경호르몬을 피하는 것을 시민 개개인의 노력에 맡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환경호르몬을 줄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규제와 노력 없이 소비자의 선택에만 의존하는 방법은 효과가 없습니다. 명명백백한 사실이에요. ‘소비자의 권리’를 운운하며 환경 오염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생산자의 편의와 이득만 추구하는 행태는 무책임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이 환경호르몬 저지에 관심을 갖고, 관련 환경 단체에 가입하기를 바랍니다. 환경 단체에 후원을 해주면 더 좋겠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환경 단체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SNS에 ‘좋아요’를 눌러주면 더 좋겠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뭉치면 할 수 있어요. 환경호르몬을 저지하고 환경을 지키는 일은 함께 해야 합니다. 그게 나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지난달에는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 출간 기념 북토크를 통해 독자들의 궁금증도 직접 들었죠.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나요?
환경호르몬보다는 여성질환에 관해 묻는 독자가 많았는데요. 대부분 산부인과 질환때문에 환경호르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더라고요. 그 중에서 영양제와 관련된 질문이 기억나요. 요즘 자궁이나 난소에 좋다거나 환경호르몬 해독을 돕는다는 영양제가 많은데 다 챙겨 먹으려면 종류가 너무 많다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우선 영양제를 맹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 역시 영양제를 챙겨 먹는 편이 아니고요. 물론 원인도 모르고 치료도 안 된다는 질병을 완경할 때까지 갖고 있어야 하는 환자들은 영양제 광고에 귀가 솔깃할 거예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테니까요. 하지만 부족한 영양소는 영양제가 아니라 음식으로 채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호르몬을 해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노시톨을 영양제로 섭취하면 배란 장애나 난소 기능에도 도움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보다는 브로콜리나 콜리플라워, 양배추 등 이노시톨이 풍부한 채소를 꾸준히 먹는 것이 몸에 더 좋답니다.
책을 출간하기 전부터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대중과 환자들에게 환경호르몬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병원에서의 일과 커뮤니티에서의 소통을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블로그를 운영한 지 19년이 됐네요. 처음에는 공부하는 내용을 정리하는 겸 환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진료실에서 하지 못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것도 무척 좋았죠. 그러다 환경호르몬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카페를 열었습니다. 회원들의 정보 공유보다 제가 회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공간이 되기는 했지만요. 실은 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의사에게 좋을 게 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지속하는 이유를 꼽자면, ‘환자들에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거야’라는 마음입니다. 가끔 카페를 통해서 임신이나 출산 잘 했다고 안부를 전하는 회원들도 있어서 좋아요. 가끔은 스스로 사람이 그리운 건가 싶을 때도 있는데요. 병원이든 아니든 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고, 또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삶이잖아요. 보통 환자들이 의사에게 기댄다고 생각하지만, 의사도 환자에게 기대고 있어요. 카페나 블로그는 우리가 서로 동등하게 기대고 있음을 확인하는 공간이에요.
청담산부인과의원 로봇수술센터장으로서 최근에는 2024년 제3회 대한산부인과 로봇수술학회에서 강연도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로봇수술이란 무엇인가요?
전 세계에서 로봇수술이 가장 많이 시행되는 분야 중 하나가 산부인과인데요. 골반 안쪽을 수술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복강경 수술이라고 해서, 보조자가 복강을 비추는라는 카메라를 잡아주고 수술자가 선 채로 수술을 진행합니다. 긴 막대기 같은 수술 도구를 사용해야 해서 수술자의 손목과 어깨, 허리에 상당한 피로감을 주는 방식이죠. 그런 만큼 수술자 개인의 피로도, 보조자의 숙련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술법이에요. 하지만 로봇수술은 수술자가 앉아서 수술하고, 카메라를 잡아주는 역할도 로봇이 수행하기 때문에 수술자, 보조자의 컨디션, 숙련도와 관계없이 일정한 수준의 수술이 가능합니다. 특히 로봇수술에서 쓰이는 카메라는 약 20배까지 확대가 되므로 수술 중 정상 조직이 다칠 위험성이 매우 적습니다. 그만큼 정밀하고 세밀한 수술이 가능해 난소 수술에도 유리합니다. 또 로봇 팔이 정교하면서도 힘이 센 덕분에 거대 근종이나 선근증 수술을 쉽게 시행할 수 있고, 유착을 제거하거나 박리할 때도 매우 유리하지요. 로봇수술의 단 하나의 단점은 비용이 비싸다는 건데요. 로봇수술의 장점이 확실한데도 가격 때문에 선택하지 못 하는 환자들을 볼 때 마음이 참 어렵습니다.
왜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나요?
가장 큰 이유는 남성 환자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릴 때 겪은 가정폭력 때문에 중년의 ‘소리 지르는’ 남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극복했고 인간에 측은지심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지만, 전문 과목을 선택할 때는 20대였으니까요. 두 번째 이유는 산부인과 병동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기쁨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아기가 태어나고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산과 병동이 정말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동의할 거예요. 이 밖에도 같은 여성으로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200%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제가 전공의 때만 해도 ‘생리통은 그냥 참는 거다’ ‘생리할 때 원래 아프다’ ‘애 낳으면 좋아진다’는 말을 교수님이 하실 정도였어요. 심지어 당시 정신건강의학과 교과서에는 ‘여성은 남성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있고 그 질시가 생리통의 원인’이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니까요. 학생 때 생리통이 심했던 터라 그 대목을 보면서 심란했어요. ‘내가 진짜 남자를 부러워해서 생리통이 심한 건가?’ 싶어서요. 제가 조교수 때, 학회에서 생리통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나이 많은 남자 선생님이 ‘생리통이 뭐라고 학회에서 발표까지 하고 치료법을 공부해야 하냐, 너무 유난이라는 생각 안 드냐’라는 거예요. 생리를 안 해본 사람이, 생리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생리로 고통받는 환자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속으로 말해요. ‘자궁도 없는 사람이 뭘 알겠어?’ 물론 밖으로 꺼내지는 못 하지만요.
당시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요. 저 역시 렛허에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여성 건강 정보들을 공부하며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여성의 몸과 건강에 관해서는, 심지어 대부분의 여성이 경험하는 월경에 관한 증상들조차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직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와 같은 문장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여성으로서, 또 산부인과 의사로서 아주 깊이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남자가 아기를 낳았다면 분만 통증을 다스리는 방법이 반세기 전에 해결됐을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과거에는 여성 의사 자체가 너무 드물었기 때문에 여성의 질병에 대한 이해도도 정말 바닥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히스테리’가 ‘자궁’의 어원이겠어요? 그 시절에 자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죠. 그러니 산부인과 질환에 대한 연구나 원인에 대한 탐구가 있었을 턱이 없습니다. 제가 전공의 때 교과서에 대부분의 산부인과 질환은 ‘여러가지’ 원인으로 생긴다고 두루뭉실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잘 모른다는 소리예요. 치료 방법만 해도, 근종이 있으면 근종을 떼고 난소에 혹이 있으면 혹을 떼거나 난소를 떼라는 것뿐이었어요. 약물 치료는 아예 개발조차 안 됐고요. 학문으로서의 산부인과는 다른 진료 과목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 산부인과 의사가 점점 늘고, 질병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덕분에 최근에는 다양한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근 20년 사이에 눈부시게 발전했어요. 여기에는 환자들의 인식도 한 몫을 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산부인과 질병이나 불편함을 숨기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요즘은 SNS를 통해 서로의 고통이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누잖아요. 이런 변화가 의학계 전체에 브레인스토밍의 효과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의학 연구, 정보의 성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의학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를 예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성차의학(sex/gender specific medicine)이라는 학문이 도입되어 있기는 합니다. 건강과 질병에 대한 남녀 간의 차이를 생물학적 성별과 사회적 성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성별과 젠더 특성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보다 적합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국내 병원 중에 성차의학 연구소를 개설한 병원도 있고요. 다만 학문적으로 같은 질병이 있더라도 여성과 남성이 다른 경과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연구자들의 학구열을 자극하여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지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의학계의 젠더 차별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은 아닙니다. 그저 성별 간의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이 학자들을 유혹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전에는 모든 환자의 대표가 ‘남자’였다는 것과 비교했을 때, ‘여자’들도 비로소 환자의 한 축으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등하다’라는 것은 젠더 간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젠더마다의 연구가 양적·질적으로 동등하게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해요. 성차의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성별 격차를 해소하고 환자로서 남녀를 평등하게 대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환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부인과 질환이나 증상에 대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 여성이 많습니다. 스스로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뚜렷한 증상에도 혼자 견디려는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리는 속이 쓰리면 위장약을 먹고, 그래도 자주 아프거나 너무 심하게 아프면 소화기 내과를 갑니다. 속이 쓰린 이유는 단순 체기일 수도 있고 위산 과다일 수도 있지만, 만성 위염이나 심지어 위암의 초기 증상일 수도 있어요. 후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는 겁니다. 생리통도 마찬가지예요. 진통제만 먹어도 좋아지는 생리통도 있지만, 어떤 생리통은 난소의 혹이나 자궁의 질병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궁내막증은 초기에 생리통 증상이 나타나고 확진까지 8년이 걸린다는 논문도 있어요. 여성의 호르몬 주기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합니다. 생리통이나 생리 주기 등의 문제는 자궁과 난소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예요. 몸이 하는 이야기를 무시하지 말고 귀를 열어주세요. 어떤 분들은 수술하라고 할 것 같아서, 무서워서 병원에 안 왔다는 분들도 있는데요. 마취하고 수술하는 것이 굉장히 두렵고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나를 위해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이라면 너무 두려워 마시고 의료진의 손을 잡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치료 시기를 놓쳐서 병원에 오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산부인과,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여성환경연대 X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 북토크 현장(청담산부인과의원 제공),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 들어가는 말
- 디자인박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