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처하고 때로는 자발적으로 SNS를 비롯한 뉴스, 각종 미디어의 광풍을 맞닥뜨린다. ‘내가 여기 있다!’며 손을 흔들어야 할 의무감까지 느낄 때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나마 손에 쥘 수 있는 인간관계를 더 멀찍이 떨어뜨려놓았다. 집에서 일도 하고 잠도 자는 일상의 변화는 코로나 블루를 더욱 증폭시켰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전달되는 우울한 소식과 내부에서 들끓는 불안이 일상을 큰 소음 덩어리로 만들어갈 때, 고요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번뜩 떠오른 건 ‘명상’이었다. 비틀스를 비롯해 마돈나, 레이디 가가, 유발 하라리, 일류 기업의 CEO들이 정신을 맑게 하는 도구로 명상을 극찬했던 대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명상을 위한 준비물은 단출했다. ‘속는 셈치고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과 스마트폰 속 명상 앱이 다였다. 여러 앱 중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마음보기 7일 기초훈련’을 멘토 삼아 일주일간 꾸준히 명상을 했다. 결과적으로 흙탕물 같던 마음을 언제든 고요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 작지만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쥔 기분이다.
Day 1
무작정 구동한 마음보기 앱의 첫 번째 세션을 들었다. 나는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약 10분간 눈을 감고 있은 적이 없었다. 명상을 위한 첫 단계는 호흡을 느끼는 것이었다. 폐가 움직이는 모양, 심장의 두근거림은 닮아 있었다. 심지어 뇌까지 심장처럼 쿵쿵거린다. 시간이 갈수록 심장이 뇌처럼 조용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암흑 속에서 내 몸의 변화를 느꼈는데 신기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Day 2
두 번째 명상 세션의 내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금, 여기’다. 내레이션을 하는 마보지기는 들숨에 ‘지금’, 날숨에 ‘여기’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작은 아이스팩 정도의 폐에 공기가 꽉 찼다가 같은 양의 숨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지금, 여기’는 마치 마법 주문처럼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어제의 말다툼, 오늘 아침의 핀잔, 내일의 걱정 따위로부터 자꾸만 현재를 찾아준다.
Day 3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소음은 명상할 때 몇 배는 더 크게 들린다. 소음 한가운데 던져진 기분에 화가 났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밖의 소음. 이번 세션에서 배운 것은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기다. ‘내가 화가 나 있구나’ 바라보아도 소음 때문에 생긴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명상은 무슨!’ 하며 앱을 꺼버릴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고역스럽지만 화가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새벽 내내 발광하는 간판 같다. 내가 화가 되어 함께 타오르기보다 화가 난 나를 그대로 인식하니 좀 가라앉는 듯했다.
Day 4
지금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을 바라보고 호흡에 집중하니 수영할 때처럼 물속에서 유유히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언제든 깊은 생각에 잠겨 허우적거릴 것 같은 느낌이 공존했다. 숨을 몰아쉬거나 한쪽의 물장구가 약해지면 바로 물 아래로 가라앉기라도 할 것처럼. 눈을 오래 감고 있는 게 여전히 좀이 쑤신다. 몸 이곳저곳이 불편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Day 5
다섯째 날은 허리를 곧게 펴고 눈을 감는 소위 ‘마보자세’가 익숙해졌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편안한 요가를 한 다음 명상을 했다. 10분 동안 좀이 쑤시는 기분은 없었고 전보다 더 쉽게 호흡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숨이 가빴다가 배까지 들어올 때도 있었다. 오늘 가장 강렬했던 생각이 번뜩 찾아왔다. ‘오늘 갔던 혜화에서 예전의 애인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상이 강렬했구나’ 깨닫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평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면 고통스러운 연애의 기억이 으레 따라왔겠지만 어쩐지, 내 기분만 깨닫고 다시 호흡에 집중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때 침묵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치스럽고 화가 날 때 침묵 속에서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행동하는 것을 나중에 해봐야겠다. 눈을 뜨니 개운했다. 사방이 선명해진 기분이다.
Day 6
호흡에 숫자를 붙이며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이전에 자꾸만 흩어지던 생각들이 호흡에 머물렀다. 처음에 눈을 감았을 때보다 호흡에 집중하기 쉬워졌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게 힘들어서 벽에 살짝 기댄 채 했는데 한결 편했다. 마음이 제일 분주한 하루였다. 좋은 사람과 만나 밥을 먹어도 그 분주함이 얼룩처럼 지워지지 않았는데, 명상 후 머릿속이 마치 하얀 캔버스가 된 것 같았다.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혼자서 침묵 속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중에는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새로운 상업적 글을 써야 하는 나는 주말에는 웬만해선 약속을 잡지 않는다. 방에 틀어박혀서 영화나 책을 한껏 쌓아놓은 채 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명상은 더 빠르게 농축된 에너지를 채워주는 느낌이다. 혼자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눈을 감는 것은 가장 빠르고 멀리 달아날 방법임을 깨달았다.
Day 7
명상은 생각을 지우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이나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의 얼룩에 들어갔다가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것 같다. 마치 기차를 타고 갈 때처럼 크고 화려한 빌딩을 보았다고 해서 시선을 그곳에 멈추는 게 아니라 빠르게 흘려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7일 동안 명상을 하며 배운 것이다. 덧붙여 명상은 침묵을 고이게 하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숨을 쉰다.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리듬에 집중하는 것은 그 외의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기능도 한다.
- 에디터김민지 (minzi@lether.co.kr)
- 글백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