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치질 환자는 총 6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12% 이상이 치질 환자라는 얘기다. 50세 이상부터는 남녀를 불문하고 절반이 겪는다는 치질은 잘못된 식습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 치질 증상이 시작되면 걷고 앉는 것은 물론이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상의 모든 행동이 매우 불편해진다. 그냥 놔뒀다 가는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에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밝혀야 하는 질병! 치질을 알고, 치질을 이해하면 덜 불편하게, 자괴감도 덜하게, 조금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
“때는 어느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스마트폰에 흠뻑 취해 배변 활동을 하고 일어나려는 찰나, 마치 꼬리뼈가 다친 것 같이 항문 쪽이 뻐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 샤워를 하는데 똥꼬 쪽에서 이상한 게 만져지는 게 아닌가… 아까 제대로 안 닦았나? 아니면 아주 가끔 섬유질이 긴 음식물 같은 경우에 덜 배출돼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하는데, 그런 건가 싶었다. 차마 거울로 확인하면 더 겁날 것 같아 소심하게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내 똥꼬에 생긴 것은 치핵, 내가 걸린 병은 바로 치질. 이렇게 나는 치질을 인정했다. ‘치밍아웃하겠습니다!’라고.”
-어느 치질 환자의 치밍아웃 이야기
치질(Hemorrhoid, Piles)의 사전적 의미는 항문 내외부에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질환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지만, 치질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치질은 크게 치핵, 치열, 치루 등으로 나뉘며, 그 원인과 증상이 각각 다르다.
항문에서 피가 나고, 콩알 같은 덩어리가 생겼다면?!
먼저 치질의 8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치핵은 항문관 안 점막에 콩알 같은 덩어리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서두에 들었던 예가 바로 치핵에 관한 이야기다. 대변을 본 뒤 뒤처리를 하는데 휴지에 피가 묻었거나, 변기가 피로 물들었다면 치핵을 의심할 수 있다. 치핵도 생기는 위치에 따라 내치핵과 외치액으로 나뉜다. 치핵이 항문 밖으로 돌출한다면 내치핵, 항문 근처에 단단한 콩처럼 만져지는 무언가 생겼다면 외치핵이다. 치핵 중에서도 90%가 내치핵인데, 탈출 정도와 상태에 따라 1도에서 4도로 구분할 수 있다. 1도와 2도의 경우 약물치료나 연고, 좌욕과 같은 보존치료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지만, 출혈이 눈에 띄게 발생했거나 3, 4도의 경우에는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내 증상은 치핵 몇 기?
통증도 없고, 치핵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았지만, 선홍색 항문 출혈이 나타났다면? -> 내치핵 1기
배변 시 치핵이 밖으로 탈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 내치핵 2기
치핵이 밖으로 탈출해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 내치핵 3기
치핵이 계속 밖으로 빠져나와 있고, 심한 통증과 출혈, 괴사 증상이 있다면? -> 내치핵 4기
장시간 용변을 보는 습관이나 잦은 설사와 변비의 반복이 심해지면 치핵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용변 시간에 ‘세월아 네월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은 치질에 최악이다. 항문이 힘이 들어가고 복압이 증가하면서 치핵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외치핵, 내치핵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가족력, 스트레스, 과음, 흡연,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해서도 치핵이 생길 수 있다.
찢어지는 고통 치열, 고름 터지는 치루
치열은 항문 입구에서 항문 내부에 이르는 부위가 찢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찢어지는 고통을 느낄 정도로 열나게(?) 아프다. 보통 딱딱하고 굳은 변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항문 점막이 손상돼 생기기에 누군가는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항문 점막이 손상되기에 배변 시 출혈이 생길 수 있고, 변기에 앉아있는 시간이 극도로 괴로워진다. 치열도 치핵과 비슷하게 변비로인해 딱딱한 대변이 나올 때 주로 생기는데, 상처가 깊지 않은 초기에는 괜찮지만 아물지 않고 상처가 깊어지면 궤양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과 식이섬유를 충분하게 섭취하고, 변비에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는 것이 치열 치료에 포인트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배변하고, 최대한 3분 이내에 끝낼 수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치루는 항문이나 직장 주위 고름이 터져 항문 안쪽에서 바깥쪽 피부 사이에 작은 통로가 생기고, 거기서 분비물이 나오는 상태로 대부분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 치루의 경우 피나 고름 같은 분비물이 자주 묻어나고, 통증도 동반되기에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치질 질환 중 하나다. 특히 치루는 오래 방치하면 치루 암이 될 수 있다. 술이나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배탈이 잦아 설사를 자주 하면 항문샘에 세균이 들어가 염증과 고름이 생기게 생기는 것이다. 평소 술이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치루의 증상이 보일 때 수압 센 비데도 피하자. 비데의 자극으로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 에디터한혜선 (sunny1479@naver.com)
- 디자인권영아
- 도움말김진섭(대장항문외과 전문의, 좋은아침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