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자위에 도구를 이용했을까?
지금으로부터 2만 8,000여 년 전. 시간을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 시기. 현생 인류도 아닌 무려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구석기 시대에도 딜도가 있었다. 2005년 독일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남성 성기 모양의 석기가 그 주인공이다. 발견 당시에는 종교의식에 사용된 물건이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길이 20cm의 사실적인 생김새를 고려했을 때 여성 자위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기원전 700년경 고대 그리스의 군인들은 전쟁으로 집을 비워야 할 때 아내에게 올리스보콜리크스(Olisbokollikes)라는 이름의 바게트를 선물했다고 한다. 올리스보콜리크스의 다른 이름은 브레드스틱 딜도(Breadstick Dildo) 즉, 빵으로 만든 딜도라는 것. 실사용 여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빵을 딜도처럼 사용할 경우 인간의 몸 안팎을 오가며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의 탈무드에서도 고대 유대인들이 남성의 사정을 유도하는 도구로 빵을 사용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남성의 요도 구멍이 막혀 정액이 분출되지 못하면 따뜻한 보리빵을 항문에 올려 두고 그 열기로 사정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다만 이 역시 생식기 치료용으로 도구를 사용했다는 기록이지, 자기만족을 위해 섹스 토이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아니다.
섹스 토이의 역할을 가진 물건이 있었음이 분명해지는 시기는 기원전 400년경이다. 당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일어난 펠로폰네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희곡 <리시스트라타(Lysistrata)>가 이를 증명한다. 희곡은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아테네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장 선두에 선 주인공 리시스트라타는 그 방법으로 이른바 섹스 파업을 주도하는데, 이때 섹스 대신 딜도를 사용하는 것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200년경 중국 한나라 왕족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딜도가 발견된 바 있다. 발견된 유물 중에는 남성 성기를 닮은 길쭉한 모양의 딜도뿐 아니라 현대의 버트 플러그(항문에 넣는 딜도의 일종)를 닮은 청동기도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전자는 섹스 토이로 사용된 물건이지만 후자는 왕의 사망 후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항문을 막는, 일종의 영험한 도구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측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섹스 토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7세기 신라의 왕궁 연못이었던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발견된 17cm짜리 나무 조각이 그 주인공이다. 남성의 성기를 본떠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유물의 이름은 ‘각좆’. 실제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로, 우리나라 조상들은 동물의 뿔이나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이것을 섹스 토이로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섹스 토이의 거래에 관한 기록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데, 방물장수들이 각좆을 들고 다니며 과부나 궁녀들을 대상으로 판매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조선시대 종로에서 운영하던 잡화점 동상전에서도 각좆을 취급했는데, 이를 사러 온 궁녀들이 무엇을 찾는지 말을 하지 않는 일이 잦아 ‘동상전에 들어갔나’라는 속담이 생기기도 했다. 먼저 말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라고.
바이브레이터는 어떨까? 항간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인류 최초의 바이브레이터 개발자이자 사용자라는 속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해줄 기록도 전무하다. 현시점에서 기계식 바이브레이터의 시초로 여겨지는 것은 1880년 영국 내과 의사 조지프 모티머 그랜빌(Joseph Mortimer Granville)이 발명한 전동 마사지기다.
이 전동 마사지기는 남성의 근골격계 질환이나 여성의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됐다. 근육이나 뼈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전동 마사지기를 이용했다는 것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신경증에 관해서는 의아하다. 여기에는 2,500년 전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진 여성에 대한 무지가 작용했다. 신경증을 뜻하는 히스테리(Hysteria)는 그리스어에서 자궁을 뜻하는 히스테로스(Hysteros)에서 유래했다. 그렇다. 당시 사람들은 여성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이나 우울, 예민함을 느끼는 것을 모두 자궁의 탓으로 돌렸다. 또 성욕이 없거나 왕성한 여성도 모두 비정상적인 상태로 간주, ‘방황하는 자궁’을 치료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치료법으로 고안된 것이 오르가슴이었고, 오르가슴을 유도하는 도구로 전동 마사지기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쓰던 기기를 가정용으로 보급하는 과정에서는 ‘여성의 오르가슴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쉬쉬했던 것으로 보인다. 1917년 전동 마사지기 브랜드 셸턴 일렉트릭 컴퍼니가 발간한 사용 설명서를 보면 ‘천식, 비듬, 발기 불능, 비만, 눈의 습기, 주름을 포함한 86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남성 성기능 장애에 관한 언급은 있지만 여성을 위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전동 마사지기가 마침내 섹스 토이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여성용 바이브레이터로 급부상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렀을 때다. 당시 미국의 성교육 전문가이자 아티스트였던 베티 도슨(Betty Dodson)은 여성의 성 해방 운동에 앞장서며 보디섹스 워크숍, 자위 워크숍 등을 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두피 마사지용 전기 진동기가 섹스 토이로서 적합할 것 같다는 소개를 받은 베티 도슨. 솔깃한 그는 다양한 전기 진동기로 자위를 시도했고, 그중에서 일본 브랜드 히타치의 매직 완드가 클리토리스 자극과 오르가슴 유발에 매우 훌륭한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베티 도슨이 자위 워크숍에서 이를 직접 사용하고 소개하면서 히타치 매직 완드는 여성용 바이브레이터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됐다.
역사 속 섹스 토이의 변천사를 돌아보면 인류의 섹스 토이는 여성의 자위를 돕는 도구로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섹스 토이 산업은 오랜 시간 철저히 남성 중심 시장으로 형성되어 왔다.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갖는 위치의 차이 때문일 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활동이 왕성한 쪽은 남성이었으므로, 주요 소비자가 여성이라 할지라도 이를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성별은 남성이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동상전 주인이나 방물장수가 남자였던 것처럼 말이다.
1960년대 들어서며 세계 곳곳에 섹스 숍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거의 모든 숍이 남성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았다. 숍에는 나체 상태의 여성 모델이 표지에 자리 잡은 잡지가 전시되었고, 일부 매장에서는 고객과 직원의 성적인 접촉을 알선하기도 했다. 여성이 방문할 만한 섹스 숍이 없다는 현실에 맞서고자 여성 사업가들이 나섰다. 베티 도슨의 보디섹스 워크숍에서 히타치 매직 완드를 처음 경험한 뒤 섹스 토이의 가치를 알게 된 델 윌리엄스(Dell Williams)는 1974년 여성을 위한 섹스 숍 이브스 가든(Eve’s Garden)을 세웠다. 1977년에는 섹스 테라피스트이자 성교육 전문가인 조아니 블랭크(Joani Blank)가 여성이 방문하고 싶은 섹스 숍을 목표로 굿바이브레이션(Good Vibration)을 창립했다.
사실 세계 최초로 섹스 숍을 설립한 것 역시 여성이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공군 소속 조종사였던 베아테 우제(Beate Uhse)다. 전쟁으로 남편과 사별한 그는 음지에서 섹스 토이를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피임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독일에서 피임이 금기시되는 주제였으며, 콘돔을 찾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베아테 우제는 피임을 위한 생리 주기 계산법을 정리한 책자를 만들고, 피임약을 들여와 우편 주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1962년, 플렌스부르크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처음에는 부부 위생 연구소(Institute of Marital Hygiene)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이곳이 바로 세계 최초의 섹스 숍이다. 설립 초기에는 독일의 음란물 금지법 때문에 운영이 녹록지 않았으나, 1970년대 음란물 금지법 완화 이후 사업이 번창하면서 베아테 우제의 이름으로 간판을 바꿨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얘, 휴게소에서 다마스 세워놓고 성인용품 팔잖아” 몇 년 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끈 코너에 나온 대사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섹스 토이 판매가 음지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특정 성기를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안정성이 입증된 섹스 토이와 아이템을 취급하는 브랜드와 매장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여성 친화 반려 가전 숍을 표방하는 플레져랩, 유포리아, 피우다 등이 한국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대기업이 운영하는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에서도 ’섹슈얼 웰니스’라는 카테고리 아래 섹스 토이를 취급하는 등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참고<바이브레이터의 나라>(린 코멜라 저, 조은혜 역)
- BBC Three on Youtube, <leopatra had a VIBRATOR? | The Real History of Sex>
- Ati, <The 30,000 Year History Of The Dildo>, Feb 12, 2018
- The New York Times, <Beate Uhse, 81, Entrepreneur In the Business of Erotic Goods>, July 22, 2001
- 이미지European Association Of Urology, 국립경주박물관, Star Vibrator AD,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