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결혼한 지 5년,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2021-06-10

딩크족은 아니지만 아이 없이 살다 보니 아직 산부인과에 갈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산부인과에 가보기로 했다. 내 생애 첫 산부인과 진찰, 내 자궁은 괜찮을까? 아니 그보다 굴욕 의자는 괜찮을까?

남자 의사한테 진찰받는 거 어때?

주변 임신한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의사 선생님이 진짜 다 보는 거야?”, “민망하지 않아?” 이런 나의 질문에 친구들은 하나 같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나중에는 다 괜찮아져.”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내 입장에서는 친구들이 뭉뚱그려 말하는 ‘좀 그랬다’는 게 어떤 건지가 궁금한 건데 더 자세히 물을라치면 애처럼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다. 산부인과 진료에 대해 ‘굴욕 의자’니 ‘굴욕 3종 세트’니 이런 말이 떠도는 것을 보면 친구의 덤덤한 대답만큼 쿨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왜 아무도 자세히 말해주지 않을까. ‘다 괜찮다, 닥치면 다 한다, 그냥 의사와 환자일 뿐이다’하며 한 마디 말로 얼버무리고 어디를 어떻게 왜 진찰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산부인과 그들만의 이야기. 이런 쿨한 듯 쿨하지 않은 모순적인 현실은 ‘굴욕’이라는 단어에 주눅만 들어 산부인과는 굳이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돼버렸다. 산부인과는 그렇게 멀어진다.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 맘먹고 병원 검색부터 시작했다. 우선 조건은 집과 가까운 곳. 정기적인 진찰을 받게 될 때를 대비해 너무 멀거나 교통이 좋지 않은 곳은 제외했다. 그 다음은 진찰을 잘 하는 곳.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최선은 지역 맘카페를 열심히 드나들며 후기를 잘 살피는 방법뿐. 어느 병원이나 후기가 100퍼센트 좋거나 나쁜 곳은 없기 때문에 진료의 질적인 평가가 아닌 서비스에 대한 감정적인 의견은 걸러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민했던 건 의사의 성별. 원래는 이 조건이 최우선이었지만 검색을 하면서 점점 후순위가 돼버렸다. 집과 가까운 곳에 여자 의사가 있는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아직은 검증된 리뷰를 찾을 수가 없어 결국은 남자 의사에게 가야할 판이다.

이때부터 마인드 컨트롤도 시작됐다. 어차피 의사가 하는 진찰일 뿐 아무런 상관없다고 되뇌고 되뇌며 ‘쿨한 척’ 예약 전화를 하는데, 저 너머 들리는 친절한 목소리.

“선생님이 남자분인데 괜찮으세요?”

아, 나는 정말 괜찮다고요, 왜 또 날 흔드시나요..

부끄러움은 잠시 넣어둬

산부인과에 가기로 한 당일이다. ‘그때 여자 선생님 진찰 시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옷은 치마를 입고 가야 하나?’ 병원에 갈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 멍하게 생각이 복잡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선 나는 조심스럽게 산부인과 진찰이 처음임을 밝혔다. 내 자궁 상태가 궁금해서 왔다는 대답에 의사는 ‘아주 잘 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의사의 그 한 마디에 그제야 제대로 왔구나 안심이 되었다. 일반건강검진에서도 선택 사항이라 늘 피해왔던 자궁경부암 검사와 함께 자궁근종을 정확하게 검사하기 위해 세포검사 외에 확대경과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게 좋다고 한다. 뭔지 잘 모르지만 자궁을 살펴보는 데 있어 기본적인 검사라 했다. 검사 항목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끝나자 간호사가 진료실 한 켠의 작은 탈의실로 안내했다. 큰 치마를 입고 하의를 모두 벗고 나오라는 안내.

네, 일단 그렇게는 하겠는데, 저기 앉아야 하나요? 내가 물을 새도 없이 간호사 선생님이 어떻게 앉는지 알려준다. 주춤주춤 자세를 취하자 의자는 진찰하기 좋은 각도로 젖혀지고, 의사 선생님이 잘 볼 수 있도록 치마도 걷혔다.

‘으악 정말 미치겠다, 이 자세라면 여자 선생님 앞에서도 부끄럽겠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새 없이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에 나오는 내 자궁 상태를 이리저리 설명해준다. 잔혹이 보이는데 치료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아마 몇 년 전 생리통으로 고생을 좀 했는데 그 녀석 때문인가 생각했다. 어쨌든 괜찮다고 하니 한숨 놓인다. 막상 진찰을 받으니 부끄러움도 잠시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의사 선생님께 평소 궁금한 증상들을 물어보며 모니터에 비친 내 자궁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선생님도 최대한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마지막으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위해 필요한 조직을 떼어내고 진료는 다 끝났다. 10분이 채 걸렸을까?

생리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당당히

여배우 채정안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울랄레오TV에서 산부인과 브이로그를 진행했다. 동행인이 여자 연예인 최초의 산부인과 브이로그라며 그 용기를 칭찬하자 이 쿨한 여배우는 ‘생리한 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가는게 당연하지 무슨 자랑거리냐’며 자발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자궁의 안전을 위해서는 미혼이라도 꼭 산부인과를 가야한다는 당부와 함께.

소위 말하는 산부인과의 ‘굴욕 의자’는 여성들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순간을 참고 견뎌야 하는 곳으로 생각해 붙여놓은 이름일 것이다. ‘굴욕’이라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뜻이다. 수치스럽고 모욕을 당한 느낌이 들 때 주로 쓰는 말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굴욕 의자에 앉아 진료를 받을 때 업신여김을 받는 느낌은 없었다. 물론 처음 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는 몇 초의 시간,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당황스러웠던 건 사실이나 당황스러움이 굴욕은 아니다. 치과나 이비인후과 등에서 앉게 되는 진찰대와는 분명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굴욕 의자’라 부르며 산부인과 가기를 꺼린다면 내 몸에 이상이 왔을 때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의자에 ‘굴욕’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굴욕을 당하지 않으면서도 굴욕을 당하고만 꼴이 된다. 괜히 굴욕이라는 단어가 여성에게 산부인과를 두려운 곳으로 만든다. 산부인과는 그렇게 겁을 먹고 꺼려서는 안 되는 곳인데 말이다.

병원 데스크에서 8만원 정도를 수납했다. 작년 건강검진 때 검사를 할 것을, 이번 검사는 무료가 아니다. 그렇게 진찰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마치 큰 숙제를 마친 것 마냥 홀가분했다. 산부인과에서 진찰받기 꺼리는 친구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산부인과 의사는 우리가 검사 받고 싶어 하는 자궁을 열심히 보고 이상이 없는지 진찰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다만 의료용 의자에 앉을 뿐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서 말이다.

  • 에디터
    서희라 (seohr@lether.co.kr)
  • 신세라(brunch.co.kr/@esincera)
  • 평범하고 시시한 삶에서 작은 의미를 찾아 보통의 이야기를 쓰는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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