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구피임약은 ‘대체로’ 안전하다. ‘대체로’가 주는 불안정성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피임약부터 처방전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피임약까지 그 차이점을 알아봤다.
피임을 목적으로 병원에서 상담받고 피임약 복용법을 숙지했다면 사실 피임약에 대해 더 이상 알아야 할 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약국에서도 쉽게 구입해 복용할 수 있는 경구피임약은 임신 예방 외에도 여성호르몬 분비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므로 좀 더 정확하게 숙지할 필요가 있다.
피임약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들어 있는데, 실제로 몸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 아니라 구조를 비슷하게 만든 호르몬 유도체다. 두 유도체가 몸에 흡수되면 호르몬 농도가 임신했을 때처럼 바뀌어 몸이 임신 중이라고 착각해 피임 효과를 낸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경구피임약의 작동 원리와 효과는 모두 같지만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유도체의 종류와 함량이 조금씩 다르다. 이 차이에 따라 피임약을 1세대부터 4세대까지 구분하고, 먹는 법과 부작용, 효능이 달라진다.
일반 피임약과 전문 피임약의 차이
피임약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세대’라는 단어 때문에 숫자가 클수록 좀 더 좋은 약으로 오인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다만 초창기에 나온 1세대 피임약은 에스트로겐이 고용량으로 함유돼 부정출혈과 심뇌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커 지금은 퇴출된 상태다. 2세대와 3세대는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고, 4세대 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을 가르는 기준은 호르몬 유도체의 종류, 특히 약에 함유된 프로게스틴(프로게스테론 유도체) 종류이지 결코 좋고 나쁨의 차이가 아니다. 그러니 무조건 세대가 높은 피임약을 고르는 건 지양해야 한다.
그렇다면 프로게스틴의 어떤 점 때문에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약과 그렇지 않은 약을 구분하는 것일까? 바로 효능과 부작용 때문이다. 일반의약품인 2세대에 포함된 프로게스틴은 다모증과 여드름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다. 3세대 경구피임약은 2세대의 단점을 개선한 약으로 다모증, 여드름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부종이 나타날 수 있고 혈전 가능성이 조금 있다. 전문의약품인 4세대 경구피임약은 앞서 언급한 다모증, 여드름, 부종 부작용이 없는 대신 혈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2, 3세대 피임약보다 2~3배 높다. 혈전은 말하자면 핏덩어리인데, 이 덩어리가 혈관을 돌아다니다가 심장으로 가면 심근경색, 뇌로 가면 뇌경색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의사와 상담이 필요한 것이다. 또 4세대 경구피임약은 피임 목적보다는 호르몬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PMS, 여드름 등의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의사의 판단에 따라 사용하므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세대별 특징은 프로게스틴으로 나뉘지만 에스트로겐 함량도 확인해야 한다. 에스트로겐 함량이 높으면 구역질과 같은 위장장애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1세대 피임약이 부작용으로 사라진 이후 대부분의 피임약은 에스트로겐 저함량으로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에스트로겐 함량이 너무 낮으면 피임 효과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일반의약품이더라도 구입 전 의료진과의 상담은 필수다.
김소연
약사
약사이자 약학 박사로, 글로벌 기업에서 신약 개발에 참여하는 동시에 네이버 하이닥 의약학 전문 상담 약사로 활동 중이다.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좀 더 정확하고 올바른 건강 정보와 식품, 약에 대해 알리고자 ‘약방언니’라는 닉네임으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 에디터서희라 (seohr@lether.co.kr)
- 자문김소연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