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당신이 피임에 실패할 확률

2021-07-13

“나는 이해가 안 가. 우… 우리는 콘돔을 사용했잖아.”
여자친구 레이첼의 임신 소식에 크게 당황한 로스는 급기야 콘돔의 피임 확률을 박스 겉면에 크게 써놓지 않은 콘돔 회사에 분노를 표출한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한 대목이다. 무려 20여 년 전 시트콤에 등장했던 에피소드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누가 피임을 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피임에 기대하는 건 임신이나 성병에 대해 안전한지와 부작용 걱정 없이 내 몸에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줄타기하다 보면 결국 ‘여자보단 남자가 피임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피임은 어느 한쪽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

렛허가 2049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많은 이들이 콘돔을 이용하는 피임법에만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콘돔은 여성의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피임법이지만 남성의 인식과 태도에 기댈 수밖에 없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에는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 콘돔을 이용한 피임법은 제대로 착용하지 않거나 관계 중 콘돔이 빠지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피임 실패 확률이 최대 18%에 이른다. 10명 중 1.8명은 임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매독, 질염과 같은 성 매개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반대로 여성 피임법은 임신 예방에는 효과가 탁월한 반면 성 매개 감염에 대해서는 방어막을 치지 못한다. WHO와 국내외 피임 전문가들이 여성과 남성이 함께하는 이중 피임 또는 상호 피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호르몬 피임으로 인한 부작용보다 더 큰 부작용은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하면 원하는 시기에 임신해 계획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온전한 피임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피임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여성 피임률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2015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경구피임약 복용률이 프랑스 39.5%, 독일 37.4%, 영국 28%에 비해 우리나라는 2%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호르몬 피임에 대한 오래된 부정적 인식과 부작용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호르몬 피임으로 인한 부작용보다 더 큰 부작용은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하면 원하는 시기에 임신해 계획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온전한 피임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여성이 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은 다양하다. 경구피임약부터 자궁 내 장치, 피하이식제 시술까지 자신의 몸에 맞는 피임법을 선택하면 부작용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피임법에 따른 피임 성공률과 장단점을 아는 것은 결국 나의 몸을 아는 일과도 같다.

  • 에디터
    서희라 (seohr@lether.co.kr)
  • 사진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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