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인 섹스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관해서는 이미 숱한 연구들이 보고된 바 있다. 그렇다면 섹스와 뇌 건강의 관계는 어떨까?
규칙적인 섹스가 인지 퇴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해외 연구들이 있다. 그중 한 연구는 50~89세의 6,800명을 대상으로 성 생활을 활발히 하는 참가자가 그렇지 않은 참가자에 비해 수학 및 기억력 테스트에서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보다 낮은 연령대의 18~29세 여성 78명을 대상으로 섹스 횟수와 기억력 테스트를 비교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학계에서는 정서적 친밀감을 전제로 한 관계에서의 규칙적인 섹스가 해마의 뉴런 성장을 증가시켜 기억, 학습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나이가 들더라도 의사소통과 어휘력, 단어 기억력 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족스러운 섹스를 즐긴 사람의 뇌에서는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 스트레스를 제거하는 엔도르핀과 즐거움과 연관된 도파민,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신체의 이완을 유도하는 프로락틴 등이 분비된다. 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는 완화시켜 우울,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그 덕분에 섹스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울감이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덜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동안 뇌에서 옥시토신, 엔도르핀, 도파민, 세로토닌, 프로락틴의 분비가 늘어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꼭 오르가슴에 도달하지 못 했다고 하더라도 섹스의 순기능은 정상적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2011년 발표된 해외 연구에서는 섹스 중 여성의 뇌 활동을 추적한 결과,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화학 물질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오르가슴을 느끼기 훨씬 전부터 활성화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나치게 오르가슴에 집착하며 오르가슴에 이르지 못한 데 큰 실망감을 느낀다면 심신의 긴장감이 상승하며 두뇌의 화학 작용을 경험하기 힘들 수 있다.
미국의 성과학자인 비버리 휘플은 섹스가 여성의 천연 진통제라고 했다. 섹스로 분비되는 옥시토신, 엔도르핀, 세로토닌 등이 여성의 통증 역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휘플 박사는 연구를 통해 섹스, 특히 오르가슴이 여성의 통증 내성 역치를 75% 높이고, 통증 인식 역치는 100% 이상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위 역시 섹스와 마찬가지로 인지 기능의 향상, 정신 건강 개선 등의 효과를 보이는 것은 맞는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을 보면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자위보다 섹스를 할 때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위에는 없고 섹스에는 있는 한 가지 요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바로 ‘정서적 교류’와 ‘친밀감’이다. 실제 섹스의 두뇌 기능 향상 효과를 다룬 연구들에서도 섹스의 횟수만큼 관계의 질(파트너와 얼마나 가까운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랑하는지 등)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를 바꿔 생각하면, ‘사랑 없는 섹스’보다야 자위가 더 낫다고도 볼 수 있겠다.
섹스 자체가 뇌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섹스가 뇌 건강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섹스하고 싶은 때’에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적 고통이 심한 섹스(성교통 등), 성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하는 섹스, 즉 원하지 않는 섹스는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뿐더러 깊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참고제임스 굿윈, <건강의 뇌과학-날마다 젊어지는 뇌의 비밀>, 박세연 역, (현대지성, 2022)
- Erica Sloan,
, WELL+GOOD, 2022. 4. 4. (https://www.wellandgood.com/sex-good-for-you-without-orgasm/) - 디자인이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