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Her SPEAK

리리러피 젤은 러브젤과 달라요

2024-09-03

전 세계 섹슈얼 웰니스 시장의 주요 타깃층은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 시장을 주도하는 여성의 수는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잊지 못할 특별한 순간을 선물하는 섹슈얼 웰니스 브랜드 리리러피(lililufy)예요. 모든 구성원이 여성으로, 시그니처 제품인 밸런스 젤 시리즈 역시 기획부터 개발, 디자인까지 모두 여성의 손을 거쳤습니다. 소중한 몸에 닿는 만큼 진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리리러피의 밸런스 젤은 향수병을 닮은 디자인이 인상적인데요. Let Her SPEAK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는 성(性)이라는 주제에 관한 거부감을 줄이면서도 자랑하고 싶을 만큼 멋진 디자인을 선보이고자 고심했다는 디자이너 조안을 만났어요.

리리러피 밸런스 젤 시리즈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요?

2020년 리리러피 밸런스 젤 언센티드(무향)을 출시한 후, 고객들의 피드백을 수렴하여 총 4종으로 라인업을 확장했습니다. 기존의 리리러피 젤은 몸에 맞는 밸런스, 자연 유래 성분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다면 리뉴얼된 제품은 여기에 ‘센슈얼한 감각’까지 느껴지는 디자인을 도출하고자 했습니다. 고객들이 리리러피 밸런스 젤을 처음 봤을 때, 여느 러브젤, 마사지젤보다는 세련된 화장품 케이스를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이 먼저 떠오르기를 바랐어요. ‘예쁘다’거나 ‘특이하다’와 같은 감상이 갖기를 바랐죠. 또 화장대 위나 침대 옆 협탁에 꺼내 두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바랐습니다. 또한, 젤의 향마다 고유의 그림을 매칭해 해당 젤의 경험을 직관적으로 연상하도록 의도했습니다.

 

리리러피 젤은 향마다 다른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는데요. 이 일러스트가 마치 고전 소설 속 삽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무드를 추구했기에 모든 일러스트는 손으로 직접 그렸어요. 가득 차 있는 젤 뒤로 비치는 그림을 보고 젤이 가진 풍부한 향을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으면 했거든요. 무향의 언센티드 깨끗한 느낌을 주기 위해 잔잔히 흐르는 물결을 표현했고요. 무화과 향의 원 바이트 오브 피그는 나무에 열린 열매, 그리고 달달한 느낌을 연상하기 위해 벌을 함께 그렸습니다. 귤껍질 향이 나는 탠저린 포레스트는 흔한 시트러스 향과 달리 실제 귤 농장을 걸으면 맡을 수 있는 숲과 과실 향이 동시에 느껴지는데요. 상큼하면서도 아로마틱한 향기를 표현하고자 분수대에 물이 흐르는 귤 정원을 그려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블랭킷 오버 스노우는 따뜻한 린넨, 코튼 향이 나는 젤인데요. 살갗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추운 날,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건조기에서 갓 나온 따뜻한 이불 위에서 책을 읽는 순간의 따뜻하고 포근한 향을 연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리리러피 밸런스 젤 시리즈는 로고의 형태가 대칭이 맞지 않는 도형인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끈한 자갈이 생각나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물이 흘러가며 어느 지점에서 합류했다가 다시 흩어지는 것처럼 어떤 이들은 함께 머물고, 또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잖아요? 이러한 자연의 흐름이 사랑의 방식과 동일하다고 생각했어요. 물의 비정형적인 형태가 사람마다 다른 사랑의 방식을 표현하기도 하고요. 비정형의 물방울을 모티브로 로고의 기본 형태로 삼고 브랜드 명인 리리러피(lililufy)의 길쭉한 알파벳 모양들을 울창한 숲 속 키 큰 나무들로 표현했어요. 자연이 있기에 사랑이 존재하고, 소중한 사랑을 마음껏 나누기 위해서는 자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담은 로고랍니다.

디자인과 함께 병의 소재도 고심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유리병으로 제작하고자 했는데요. 실제로 젤을 사용할 때의 환경을 고려하면 유리보다는 가볍고 파손 위험이 적은 소재가 적절하겠다는 생각에 플라스틱 용기를 선택했어요.

 

섹슈얼 웰니스 카테고리의 제품을 디자인할 때, “이제는 성 건강, 즐거움을 위한 제품도 양지로 끌어 올려야 할 때ˮ라는 업계 종사자로서의 철학과 그럼에도 여전히 “성 관련 제품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하ˮ는 소비자들의 성향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성에 대해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ʼ 하지만 동시에 ‘제품이 너무 선정적으로 보이거나, 타인에게 섹슈얼 제품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현실ʼ의 괴리에서 제품 자체의 콘셉트나 디자인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이 컸죠. 고심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먼저 성에 관해 긍정적인 목소리를 계속 내고, 고객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멋진 브랜드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서로 상충하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제품 패키지 디자인 외에 브랜드 디자인도 담당하고 있나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무드를 찾아볼 수 없는 리리러피 홈페이지도 흥미로웠거든요.

리리러피가 단순히 젤, 그러니까 러브젤, 마사지젤이라고 부르는 제품군에 속한 아이템이란 이유로 선정적인 후킹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리리러피의 브랜드 슬로건은 ‘live like love, freely’인데요. 자유롭게, 사랑처럼 사는 삶을 뜻해요. 리리러피는 궁극적으로 사랑과 같은 센슈얼한 감각을 자유롭게 즐기도록,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브랜드예요. 따라서 전반적인 디자인 역시 감각적인 이미지와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요소에 중점을 뒀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섹슈얼 웰니스 브랜드의 여성 디자이너, 조안에게 궁금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여성을 타깃으로 한 섹슈얼 웰니스 산업이 떠오르고 있는데 실제 기업을 운영하는 주체나 종사자는 여전히 여성이 적다고 해요. 이런 현실에서, 더욱이나 성에 관해 보수적인 우리나라 섹슈얼 웰니스 업계 종사자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도전 과제가 있나요?

아직도 섹슈얼 웰니스라고 하면, 음지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여성은 더욱 보수적인 프레임에 갇히기도 하고, 그런 문화 속에서 성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죠. 저를 포함해 리리러피는 여성이 성 건강과 자신의 센슈얼한 경험을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더욱 감각적이고 자유로운 제품들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디자인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 에디터
    손예지 (yeyegee@lether.co.kr)
  • 디자인
    옹수빈
  • 사진
    lililuf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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