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Her SPEAK

말하지 못한다고 마음까지 없는 건 아닙니다

2025-09-03

지난달 대통령실이 공식 브리핑에 수어 동시 통역을 도입한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역대 정부 최초의 시도인데요. 농인의 언어적 권리를 존중하는 상징적 변화로, 정부가 수어를 단순 보조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로 공식 인정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사례입니다. 이 같은 변화 뒤에는 지난 수십 년간 수어를 언어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의 노력이 있습니다. 1983년 전남농아복지회에서 수어 통역사로 활동을 시작해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의 밑거름을 놓고, 지금은 철저히 비장애인의 관점으로 이루어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여성 수어 통역사 이경례 선생님을 Let Her SPEAK에 초대했습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1983년 사단법인 전남농아복지회에서 수어 통역사로 활동을 시작해 현재는 프리랜서로 농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수어 통역, 청인을 대상으로 한 수어 교육, 농인 대상의 평생 교육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어 통역사가 된 계기가 있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수어와 함께 자라왔어요. 손위 언니가 농인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손짓과 표정으로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죠. 그때는 수어가 아니라 우리만의 홈사인을 만들어 소통했어요. 언니가 농학교에 다니면서 함께 수어를 익히게 되었고 그것이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수어는 당시 언니와 저를 연결해 준 다리였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언어입니다. 수어는 저에게 제2 모국어이자 삶의 사명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그 마음으로 수어 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수어’보다는 ‘수화’라는 표현에 익숙한데요. 두 표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수화(手話)는 ‘손의 말’이라는 뜻으로, 청인의 관점에서 명명된 표현이라고 봅니다. 언어가 아니라 단순한 몸짓 언어로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죠. 과거에는 수어를 언어가 아니라 소통의 보조 수단으로만 인식했기에 수화라는 표현이 주로 쓰였습니다. 반면, ‘수어(手語)’는 문자 그대로 ‘손의 언어’, 즉 문법과 어휘 체계를 갖춘 독립적인 언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한국 수어(Korean Sign Language)는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라 법적으로도 ‘언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수어는 한글과는 문법 구조도 전혀 다르고, 시각적 표현과 공간적 표현이 중요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한국어와도 구별되는 고유의 언어입니다. 수화가 아니라 수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단어의 차이를 넘어 농인의 언어적 권리를 인정하고,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위치의 언어임을 존중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수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농인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수어는 어떻게 탄생했고, 또 확산되었나요?

수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라 농인 공동체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해 온 언어입니다. 농인이 서로 소통하고자 몸짓, 표정, 손동작으로 의미를 전달하던 것이 시작이에요. 그것이 점차 체계화되어 지금의 수어가 된 것이죠. 그래서 초기에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쓰이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규칙 아래 어휘가 형성되고 세대 간 전승을 통해 언어로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농인 사이에서 탄생했지만, 청인과 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사용하면서 점차 사회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수어통역사, 수어 교사와 같은 청인 사용자가 등장하면서 오늘날 수어는 농인과 청인 모두의 언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농인이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요.

맞아요. 과거에는 농학교의 존재를 몰라 아예 수어를 배우지 못한 분들도 계셨고, 요즘은 농학교 신입생도 점점 줄고 있다고 해요. 청각 장애 아동이 줄어든 영향도 있겠지만, 청인 부모들이 자녀가 농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일반 학교나 구화* 중심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구화를 배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결국 적응을 못 하고 다시 농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요. 부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수어를 배우지 못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겨요. 다른 농인 친구들을 만나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공와우 수술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이 먼저 결정하기보다는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스스로 동의할 수 있을 때 선택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공와우로 들리는 소리가 자연스럽지 않아서 오래 듣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어요. 아직도 수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지만, 수어는 분명한 하나의 언어예요. 자녀가 수어를 쓴다면 그 자체로 이미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구화: 상대방의 입모양이나 표정을 읽어 이해하고 본인 또한 음성 언어로 발화하는 농인의 소통방식 중 하나

 

실제로 수어가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기까지 선생님께서도 많은 노력을 하셨지요?

제가 처음으로 “수어는 언어”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 1991년이었습니다. 그때 제 언니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어요. 농인에게 손은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언어와 소통의 도구잖아요. 그래서 봉합 수술이라도 해 보려고 잘린 손가락을 찾았는데, 이미 버려졌다는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상 심사 과정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손을 ‘언어 도구’로 보지 않고 그냥 해부학적 손상으로만 따지더군요. 결국 언니는 소통 능력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아주 낮은 등급의 보상밖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언니의 가족이자 통역사로서 관계자들에게 “수어는 농인의 언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수어를 언어로 믿어 의심치 않았음에도, 정작 그 주장을 뒷받침할 법적·학문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수어가 언어로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 다시 농인의 손가락 절단 사고 통역을 맡으면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농아인협회에 보고하며 본격적으로 사회에 외쳤습니다. “수어는 농인의 언어”라고요. 이 경험이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수화가 농인의 언어’임을 비장애인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외치다가 한국농아인협회에 연락했습니다. 농인에 대한 불합리한 처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고맙게도 당시에 농인만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단체, 발달장애인단체에서도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특히 점자를 읽는 것이 소통의 한 방법인 시각장애인에게도 손은 중요한 언어의 도구였으니까요. ‘수화는 언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장애인 단체가 서로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고, 한국농아인협회가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2015년 한국수화언어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2월, 마침내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었어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수어가 독립된 언어라는 점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농세계에 큰 전환점을 만든 뜻깊은 순간이었지요. 당시에는 ‘이제 수화가 언어로 인정받게 되었으니 관련 법들도 자연스럽게 바뀌겠지’ 생각했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면 안일한 기대였어요. 법 하나 제정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산재보상보험법처럼 농인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 법들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지금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3년, 또 한 번 산재사고 통역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한 농인이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에 손이 끼어 오른손을 크게 다친 사건이었지요. 저는 사고 직후 치료 과정부터 산재 보상 심사까지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심사 과정에서 한 심사위원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수화를 하는 데 두 손이 꼭 필요합니까?”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수어가 ‘양손을 사용하는 언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저는 직접 입증해야 했습니다. 당시 발간된 수어 교재를 기준으로 사용 빈도를 조사해 자료를 만들고, 교재 원본까지 제출했습니다. 동시에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냈지만, 돌아온 답은 “현행 산재보험법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형식적인 회신뿐이었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농인과 수어통역사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지 않으면 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작년 인천에서 열린 전국농아인대회에 참여했는데, 당시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입니다. 지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연대해 힘을 모읍시다.” 지금도 저는 농인의 산재사고 사례를 모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하려니 벅찰 때가 많습니다. 더구나 1991년 사고의 당사자였던 제 언니도, 2003년 사고의 피해자도 이미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이 더욱 큽니다.

모두가 꼭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수어는 양손 모두 사용하여 표현하는 시각 언어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정된다면 농인만 아니라 농인의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어 통역 전문가들에게도 적용되어야겠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농인에게 손의 손실은 곧 언어 기능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수어통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손과 팔은 우리에게 목소리이며 언어 도구입니다. 따라서 법이 개정된다면 반드시 언어적 기능 손실에 대한 평가 기준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합니다. 손 부상 역시 언어 장애로 간주되어 정당한 보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올여름 손 부상을 입고 한동안 통역과 강의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경험을 통해 수어통역사도 산재 대상자로 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수어통역사는 단순 보조 인력이 아닙니다. 청인과 농인을 연결하는 ‘의사소통의 다리’이자 전문직이죠. 수어통역사의 손과 팔 역시 언어적 기능을 하는 신체 부위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법과 제도 안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수어가 언어로 인정받기까지 사람들의 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에도 연대가 필요하겠습니다. 비단 농인만 아니라 청인, 비장애인들이 다 함께 말이죠.

실질적으로는 국회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각자 지역구 의원에게 이메일을 쓰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숨에 바뀌진 않겠지만, 꾸준히 의견을 전달한다면 반드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국민소통 플랫폼 모두의 광장에 〈수어는 언어다 – 농인과 수어통역사의 손, 언어로 인정되어야 합니다〉라는 정책 제안을 올렸는데요. 이를 계기로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담당자와 면담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면담에서 농인의 손 부상을 ‘언어적 기능 손실’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장해등급 판정기준 개편을 검토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제는 개인의 호소를 넘어 제도 변화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수어는 구조와 체계가 한국어와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제작할 때 영상에 자막을 달거나 음성을 그대로 문자 변환하는 것만으로는 농인에게 100% 의미를 전달하기에 부족할 수도 있겠군요. 이 인터뷰 기사가 농인에게도 쉽게 읽히려면 어떤 점을 고려하면 좋을까요?

맞습니다. 농인은 한국 수어라는 시각 언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언어적 소수자입니다. 수어는 한국어와 문장 구조, 표현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한국어가 ‘주어-목적어-동사’ 순서를 따른다면, 수어는 시공간적 요소와 동작, 위치를 활용해 의미를 전달하지요. 이 때문에 많은 농인이 글자를 읽을 수는 있어도, 청인처럼 문장을 곧바로 이해하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문해력 부족’이 아니라 언어 체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배리어프리를 위해서는 자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어 영상과 함께 핵심 내용을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내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도 한계가 있을 수 있기에, 그림·표·이미지 등 시각 자료를 함께 제공하면 이해를 더욱 도울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인터뷰 기사 본문에 QR코드를 삽입해 수어 영상으로 연결하는 방식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수어를 배우면서 궁금했던 점을 여쭐까 합니다. 수어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오래 된 사회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수어로 ‘성소수자’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동성 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을 쓰는 것처럼요.

맞습니다. 수어에도 과거의 차별적인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이 일부 있습니다. 말씀하신 예가 그 중 하나인데요. 동성 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것 역시 성적 지향을 왜곡하거나 희화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었어요. 실제로 최근에는 농인 사회 내부에서도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표현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농인 LGBT+ 단체가 2019년부터 대안 수어를 개발하고 보급해 왔으며 성소수자를 보다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5월에는 국립국어원이 이 단체와 면담을 진행해 2026년, 차별적 수어 표현에 대한 공식 연구가 수행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2027년까지 성소수자 관련 대안 수어를 ‘수어누리사전’에 등재하고, 향후 공식 행사에서도 이를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언어를 바꾸는 일은 단순히 단어 몇 개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인식과 태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바로 지금, 농인 사회도 그 변화를 이뤄가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비슷한 맥락에서 수어를 배우면서 성차별적 요소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낀 적도 있는데요. ‘선생님’ ‘단체의 장’ 등 보통명사를 수어로 표현할 때 ‘남성’을 뜻하는 엄지를 사용하더라고요.

맞아요. 지적하신 대로 수어에도 성별에 따른 역할 고정관념이 담긴 표현이 일부 존재합니다. ‘남성’을 상징하는 엄지는 ‘지도자’ ‘선생님’ ‘회장’ 등 공적 역할 표현에 자주 쓰이고, 반대로 ‘여성’을 상징하는 새끼손가락은 ‘어머니’ ‘여자친구’ ‘간호사’ 등 돌봄 역할에 치우친 표현에 사용되곤 하죠. 그래도 최근 들어 수어 교육자와 농인 단체 사이에서 제고하려는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수어를 만들거나 표준화할 때, 성중립적이고 포괄적인 표현이 되도록 고려하는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앞서 예로 들었던 것처럼 엄지손가락은 남성을 상징하는데요. 동시에 선생님, 대표와 같이 권위 있는 직책을 표현할 때도 실제 교사나 대표의 성별과 무관하게 엄지를 사용하여 표현했죠. 최근에는 여성 대표나 여성 리더를 나타낼 때 엄지가 아니라 새끼손가락을 사용하거나 왼손바닥 위에 새끼손가락을 올려 표현하는 방식 등으로 바꿔 쓰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별정체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소수자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엄지, 새끼손가락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표현법이 남성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검지로 ‘사람’ 자체를 지칭하자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이 같은 인식이 아직 농인 사회 전체에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한국 수어에도 다양성과 포용성이 반영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죠. 수어에 뿌리내린 성별 고정관념, 성차별적 요소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오랜 시간 장애 여성은 ‘여성’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이중 차별을 받고 있어요.

네. 수어통역사이자 농인 가족으로서 누구보다 가까이 농인들의 삶을 지켜보며 체감했습니다. 여성 농인들은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털어놓을 곳이 없어 혼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는 영상통화도 없어서 멀리 사는 가족이나 친구와 소통조차 어려웠고, 주변에서 수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 언니도 가족과 떨어져 살던 시절, 오랫동안 힘들게 지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때 곁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여성 농인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마음에 담아두고 괴로워하지 말고, 가까운 센터나 협회 상담가를 찾아가 꼭 이야기하세요. 누구에게라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농인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많은 여성 농인들이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하며 억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감내하면서 꿋꿋이 버티고, 또 삶을 이겨내셨습니다. 저는 그 자체로 이미 강인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지 못했다고 해서 마음속에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천천히 바뀌지만, 그보다 먼저 용기를 내어 살아온 여성 농인들에게 깊은 존경과 지지를 보냅니다. 여러분의 삶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빛나고 위대합니다.

  • 에디터
    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
    요망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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