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산부인과 한 번도 안 가봤다고?

2021-06-10

갈 필요를 못 느껴서 혹은 두려워서. 성인이 되고도 아직 산부인과에 가보지 않은 여성이라면 특히 이번 특집을 눈여겨보자.

“생리가 늦어지고 있는데 산부인과에 가야 하나요?”
“갈색 냉이 나오는데 질염일까요? 질염에 걸렸다면 왠지 문란해 보일까봐…”
“생리통이 심한데 그런 것도 산부인과 가면 좋아지나요?”
“사후피임약은 산부인과 안 가고 살 수 있나요?”

 

여성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초경을 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증상이고 고민이지만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기보다는 익명 게시판에서 답을 구하는 여성들이 더 많다.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92.8%의 미혼 여성이 임신 전에도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야 하는 증상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82.5%의 여성이 산부인과 방문을 꺼린다고 답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두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성 질환을 성경험과 비례해 판단하는 편견 어린 시선과 여성 건강에 대한 무지함이 그 이유다.

산부인과는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산과’와 부인병을 진료하는 ‘부인과’가 합쳐진 명칭이다. 나이, 성관계 여부, 결혼과 출생 여부에 상관없이 여성 건강 상담과 진료가 이루어지는 곳이 산부인과지만, 시대착오적 용어가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더욱 부추긴 것. 여성들의 자각으로 2019년 11월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바꿔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게시됐고, 4만 명이 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2020년 7월,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증상 없어도 나를 위해 가야 하는 곳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병원에 가야 할지, 검사를 받아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가’로 가늠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서울시립보라매병원의 추성일 산부인과 전문의는 증상이 없어도 가야 하는 곳, 가면 좋은 곳이 산부인과라고 말한다.

“생리가 불규칙하거나 부정 출혈이 있거나 냉이 이상할 때, 가려움이나 통증이 있을 때 당연히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증상이 없어도 가면 좋은 곳이 산부인과예요. 잘 알면 활용 방법이 다양하거든요. 예를 들어 산부인과는 임신을 준비할 때 가는 곳으로 알고 계신데 임신을 미루고 싶을 때도 가면 좋습니다. 최근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늦추거나 혹은 아이가 없는 딩크의 삶을 바라는데, 실제로 그런 계획이 자궁이나 난소의 문제 등으로 실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단순히 피임약을 처방받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주도하려고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래아이 산부인과의 류지원 전문의는 20세가 넘었다면 문제가 없어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아볼 것을 조언한다.

“생리도 잘하고 문제가 없으면 당연히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게다가 아무 증상이 없는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건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초경한 지 5년이 지났고 20세가 넘었다면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게 좋아요. 부담 없이 산부인과에 갈 수 있는 좋은 핑계도 생겼잖아요. 국가에서 만 2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지원하는 자궁경부암 검사를 활용해보세요. 증상 유무와 상관없이 검사를 통해서 다른 문제는 없는지 들여다볼 수 있고, 그동안 혼자만 끙끙 앓고 있던 생리통이나 생리량 등에 대해 의사에게 직접 물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거든요. 또 나라에서 비용을 지원해 무료로 검사한다는 건 그만큼 젊은 여성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예요. 실제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나라에서 지원해준 후부터 젊은 여성들이 병원을 많이 찾고 있어요.”

이 외에도 방광염이나 요실금도 산부인과에서 진료하고, 병원에 따라 여성 호르몬에 의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 유방 검사, 갑상선 검사도 실시한다. 최근에는 여성 V존 성형도 늘어나는 추세다. 소음순, 질 성형은 당연하고 제모나 미백 등을 다루는 산부인과가 늘어나고 있는 것. 류지원 전문의는 비뇨기과나 피부과와 겹치기도 하는데, 만약 진료받고 싶은 부위가 성기와 가깝다면 산부인과에서 먼저 확인하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제모를 받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뾰루지 등 외음부 피부 이상을 호소하는 분도 늘어났어요. 정말 피부의 문제인지 혹은 다른 문제인지 산부인과에서 확인한 후에 치료를 받거나 다른 병원을 추천받는 게 좋아요. 생식기 노출에 대한 부담이 가장 적은 병원이 산부인과이고, 그 부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진료 도구를 갖춘 곳도 산부인과잖아요. 무엇보다 불편한 부위를 산부인과에서 진료하는 게 맞는지 정말 모르겠다면 병원에 전화하면 돼요. 요즘은 메신저 상담도 많이 하니까 물어보면 됩니다.”

좋아지지 않아도 외면하면 안 되는 곳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의 첫 단계는 자신의 몸 바로 알기다. 그래야 건강을 해치는 다이어트, 불편한 속옷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했던 행동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어떨 때 병원에 가야 하는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지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두려운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산부인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번 특집의 목적은 산부인과에 대한 여성들의 막연한 오해와 편견을 거두고 유용함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보다 쉽게 산부인과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물론 옷을 벗고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낯선 의사에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산부인과에 가는 걸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 몸을 돌보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니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에디터
    서희라 (seohr@lether.co.kr)
  • 사진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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