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아이 낳을 생각은 없지만

2021-12-21

‘아이를 낳을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으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엄마 몸이 건강할 때 낳아야 아기가 튼튼하고 산모도 회복이 빨라 덜 고생한다는 다정한 속뜻이 담겨 있음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이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특히 결혼이 늦어지고 비혼 인구가 많아지면서 임신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안 낳는’ 선택이 아닌 ‘못 낳는’ 상황에 봉착하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이 두려움에 대한 보험으로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바로 난자 냉동이다. 난소 나이가 48세인 걸 알고, 서둘러 임신을 한 42세의 사유리, ‘언젠가’하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보험으로 난자 냉동을 한 안영미와 이지혜, 심지어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나 역시 난소의 기능 소실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난자 냉동은 젊음의 보존일까

우리나라 난자 냉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00년대에 처음 기술이 도입된 후 당시에는 암 같은 질병 등의 이유로 임신이 불가능한 사람만 난자 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2015년 가임력 보존 목적의 사회적 난자 냉동이 허가됐다. 이후 난자 냉동은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8,018개였던 냉동 난자 개수가 2019년에는 3만 4,168개로 4배가량 증가했다. 미국 등 해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부정적이었던 인식이 바뀌면서 ‘붐’이라고 표현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난자 냉동을 피임약 발명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만큼 여성을 자유롭게 해줄 혁명적인 사건이란 의미다. 하지만 아이가 간절한 이에게도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난자 냉동은 여러모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30분이면 끝나는 간단한 시술’이라기엔 한 달 가까이 호르몬을 조절하며 나타날 부작용을 염려해야 하고, 경제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다. 또 난자 냉동을 한다고 임신에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에선 임신에 있어 남녀의 역할이 동등하게 수행되어야만 하는데, 노화로 인한 가임력 저하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

몇 밤이 지나면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해가 뜨고 모두 공평하게 한 살을 더 먹는다. 나이에 숫자를 보태는 것에는 무감할 수 있어도 자궁 나이가 한 살 더 들었다는 사실에는 마음이 요동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결혼 유무를 떠나 많은 여성들이 난자 냉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 부작용과 역할에 따른 사회적인 무게를 차치하면 난자 냉동이 임신과 출산 시기를 보류해 줄 수 있는 의학적 대안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젊음의 보존’, ‘미래의 보험’이라는 수식어에 무턱대고 현혹되기보다는 그만큼 경계해야 할 점도 명확하다. 난자 냉동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궁과 이별해요. 그러니 난자 냉동은 선택이죠. 하지만 일단 검사를 하면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요. 또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도 알게 되고요. 막연하게 두렵고 고민이 된다는 건 자신의 상태를 잘 몰라서예요. 건강 관리 차원에서 난자 냉동을 바라보면 굳이 맹신할 필요도 불신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 유명 산부인과 전문의의 블로그에서 만난 글을 보며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살피는 것, 난자 냉동의 미래가 아닐까.

  • 에디터
    서희라 (seohr@lether.co.kr)
  • 디자인
    박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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