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간은 냄새로 기억된다.
배우 정유미는 한 매거진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향수란 기억’이라 말했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도착한 첫날 그곳에서 향수를 사서 그것을 계속 사용한다고. 시간이 지난 후 그 향수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거였다. 특정 감각의 자극으로 인해 기억이 되살아나는 ‘프루스트 효과’다.
냄새는 지극히 사적이다. 냄새는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며, 거리를 좁힐수록 진해지기 때문이다. 엄마 냄새, 아기 냄새, 홀아비 냄새, 노인 냄새……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체취를 맡고 어떤 느낌을 전달받는다. 학창 시절 처음으로 친구의 집에 들어서서 맡은 냄새가 우리 집 냄새와 달라 놀라고, 그것이 대개 생활 방식에 따라 집집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자라나야 했던가.
생활의 냄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옷과 몸에 스며들어 항상 우리 뒤를 쫓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은밀하게. 때론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한 사람을 평가하고 계급을 나누는 결정적인 소재로서, 한 인간의 자존심 혹은 자아의 일부로서 작용하면서.
내게는 임신과 출산 이후를 떠오르게 만드는 냄새가 있다. 운동 후 땀에 완전히 절어버린 속옷에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린 것만 같은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 임신 초기에는 입덧 때문에 밖에서 오는 냄새에만 예민했는데, 임신 중기·후기에 들어서자, 내 몸 냄새가 유난히 짙게 느껴졌다. 한껏 배가 부른 상태로 한여름을 겪어내는 탓도 있었겠지만, 씻는다고 해서 쉽게 없어질 땀 냄새는 분명 아니었다. 이게 대체 어디에서 나는 거지? 겨드랑이를 살피고 몇 번이나 벗은 옷에 코를 묻고 확인했다. 그 냄새는 빨래를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몸 냄새로 고통받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임신·출산·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에 가입해 임신 직후부터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그곳에도 냄새에 대한 고민이 종종 올라왔다. 입 냄새, 정수리 냄새, 소변 냄새, 겨드랑이 냄새 등등. 누군가는 자신에게서는 그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댓글을 달았고, 누군가는 자신도 냄새 증상을 겪었으나 출산 직후에 사라지니 걱정하지 말라는 댓글을 남겼다. 후각이 예민해져서 그럴 테니 샤워를 자주 해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사실 임신 중, 출산 시, 그리고 산후에 겪는 무수한 증상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백이면 백, 전부. 몸과 마음, 환경이 모두 다르므로 어떤 증세와 해결 방법을 일반화해서 적용하기는 어렵다. 몸에서 나는 냄새도 그러한 듯했다. 임신 후 체취가 생겨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체취가 임신 중에만 잠깐 나는 사람, 출산 이후에도 계속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가장 후자의 경우로, 출산 이후로도 얼마간 그 불쾌한 몸 냄새가 떨어지지 않았다.
냄새란 그 은근함 때문에 냄새를 풍기는 자의 마음을 고꾸라트린다. 자신에게서 발생한 냄새가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거라는 곤혹스러움. 아마 임신부의 체취란 실제로는 자신만 느끼는 정도 혹은 함께 생활하는 남편이 알아차리는 정도였을 테지만, 행여 일을 통해 마주한 동료가 내게서 그 냄새를 맡을까 봐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노력으로도 지울 수도 없는 냄새. 내가 풍기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닌, 기분 탓일까 싶을 만큼 은근한 그 냄새.
임신부들이 스스로를 ‘호르몬의 노예’라 칭하듯, 임신과 출산, 산후에는 호르몬이 몸과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증하는 임신 기간에는 이전보다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 대신, 출산 후 호르몬이 감소하면 탈모가 발생한다. 임신 중에는 멜라닌세포자극호르몬이 증가하면서 겨드랑이와 유륜, 사타구니 부근이 거뭇해지기도 한다. 구강 내 세균 수와 호르몬 수치 증가로 잇몸 질환이 생기기 쉽다. 정서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의 산후 우울증까지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툭하면 울음이 터져 매일매일 눈물 바람이다.
임신부의 체취 또한 호르몬 때문이다. 못 씻어서 그런 것도, 기분 탓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냄새가 내 탓이 아닌 줄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작아졌다. 한번은 남편과 몸 냄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호르몬 탓을 하며 나를 위로해 주는가 싶더니, 절대로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고 당부하곤 몇 마디를 덧붙였다.
“체취가 생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남편도 치근대지 말고 아내의 건강을 챙기고 아기를 잘 돌보라는 건지, 여보한테서 냄새가 느껴지긴 했어. 신기하게 어느 날부터 하나도 안 나!”
“…….(기분 나쁨)”
모든 게 호르몬의 농간임을 알고 있지만, 묘하게 기분이 상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화를 낼 마음도 사과받을 마음도 없었다. 입덧 시기에는 나도 남편에게서 느껴지는 아저씨 냄새가 곤욕스러워 등을 돌린 채 잠들곤 했으니까.
임신부와 산후 여성을 괴롭히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냄새라지만, 너무 미워할 수만은 없다. 이따금 냄새가 몸을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도 해내기 때문이다. 임신 초 입덧을 할 때는 후각에 예민해짐으로써 자신과 아기에게 위험한 것들로부터 몸을 멀리하게끔 작동한다. 게다가 몸에서 만들어지는 냄새는 여성의 건강 상태를 알아차리는 데 단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냉 혹은 출산 후 오로에서 냄새가 심하게 풍기거나, 임신 중 오줌에서 냄새가 나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질염 등의 질환을 발견하는 예도 많다.
그러니 은근하고 불쾌한 냄새가 꼭 불필요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편 말대로 그 기묘한 체취는 아이를 품고 낳은 여성의 몸을 방어하는 막처럼 나를 수호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인간의 몸이 호르몬을 내뿜고 그렇게 작용하도록 진화해 온 건 분명 다 이유가 있겠지, 위로하며 버텨낸 나날이었다. 그리 마음먹어도 체취도 우울감도 곤혹감도 없어지지 않았지만.
임신하고 구매했던 브래지어 몇 벌을 최근에야 다 버렸다. 임신으로 가슴이 불어나 한 사이즈 큰 속옷을 구비했던 것인데 이제는 헐거워져 입기 불편하다. 그래도 아직 낡지 않고 깨끗해 최근까지도 입었지만, 결국 다 내다 버린 이유는 역시 냄새다. 그 속옷들을 입으면 기묘하게도 임신 중 내 몸에서 나던 그 냄새가 다시금 풍기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물론 더 이상 내게서 그런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기분이 그랬다.
이제 나는 새로운 냄새와 기억을 찾아 나선다. 시큼하고 불쾌했던, 기묘하고 곤혹스러웠던 임신과 출산의 기억일랑 모두 내다 버려야지. 산뜻하게 보디로션을 바르고 내 몸에 잘 맞는 새 속옷을 입고. 새로이 스민 냄새가 마침내 나 자신 그리고 내 기억이 되도록. 냄새란 거리가 좁혀질수록 진해지는 법이니까. 냄새는 자존감이며 자아이자, 일상을 증명하는 전부일 테니까.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글김민채
- 책을 만들고 팔고 쓴다. 순천에서 책방 취미는 독서를 운영하는 프리랜스 편집자로, 『편지할게요』, 『언젠가는, 서점』 등의 책을 썼다.
- 디자인박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