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난 다음 원인 모를 슬픔, 짜증 혹은 분노를 경험한 사람? 심지어 만족한 섹스였다 해도 말이다. ‘현자 타임’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 해외에서는 ‘포스트 섹스 블루스(Post Sex Blues)’라고도 하는 이 감정, 대체 뭘까?
완전한 합의 아래 섹스했더라도, 아주 만족스러운 오르가슴을 경험했더라도 우울하고 슬플 수 있다. 신경 쓰일 정도가 아니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지속된다면 원인과 해결 방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섹스 후 우울 및 죄책감(PCD; Postcoital Dysphoria)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증상들의 신뢰할 만한 연구는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의 로버트 슈바이처(Robert D. Schweitzer) 교수가 2015년에 진행했다. 18세에서 55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약 46%의 여성이 섹스 후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을 한 번 이상 느꼈다고 한다. 비슷해 보일지라도 관계 전이나 관계 중에 느끼는 우울, 불안한 감정 중 하나인 여성 성기능부전(Female Sexual Dysfunctions)하고는 엄연히 다른 현상이다. 이런 감정적 변화는 유독 여성에게서 많이 보이는데, 슬픔, 불안함, 예민함, 우울함, 불만족스러움 그리고 눈물까지도 여기에 속한다. 전부 섹스가 몰고 온 부정적인 감정이다. 추측되는 몇 가지 원인은 아래에서 확인하자. 심각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제외하고 파트너와의 대화를 통해 이 우울감은 어느 정도 개선이 된다고 한다.
호르몬
섹스를 하면 사랑, 애착과 관련된 호르몬이 폭발적으로 분비된다. 평소와는 다른 수준의 자극과 호르몬이 온몸을 지배하는데, 섹스가 끝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슬프며, 불쾌감도 느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훌륭한 오르가슴을 경험했을 때도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섹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
평소 섹스가 나쁘거나 더럽다고 생각한 여성들에게 주로 PDC가 나타난다. 보수적인 가정 환경이나 종교적인 이유가 섹스 후 죄책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부모님에게 미안한 감정이나 죄책감을 느끼면서 울적해지는 것. 바로 그것이다.
파트너와의 관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섹스는 친밀감의 결정체다. 맞댄 몸과 몸짓 심지어 눈빛을 통해서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느낀다. 평소 파트너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이 가득하다면 섹스 후 우울하기도 하고, 심하게는 분노까지 몰려오기도 한다. 파트너와 관계가 불안할 때, 관계에 확신을 주지 않을 때, 가벼운 섹스 파트너가 된 것 같을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정체성에 민감한 여성이라면 스스로가 파트너에게 어떤 존재인지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불안과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친밀감을 형성하기 어려운 원나잇의 경우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섹스 후 파트너와 나눈 부정적인 대화가 PCD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섹스의 만족도
잠자리의 내용에 따라 슬프거나 우울할 수 있다. 특히 상대가 흥분이나 절정을 느끼지 못했을 때 우울감과 불안, 슬픔으로 휩싸인다. 자신의 퍼포먼스를 곱씹으며 상대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이유를 결국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면서 우울과 불안함에 빠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반응때문에 우울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반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우울할 수 있으며 반대로 너무 과장하거나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을 때도 마찬가지다. 또 섹스할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관계 후 울적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과거의 경험 및 트라우마
어린 나이에 학대받은 적 있다면 섹스 후 PDC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성인이 되어 성적으로 학대받은 과거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꼭 강간과 같은 성범죄의 경험이 아니어도 과거 파트너의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잠자리를 가졌다면 섹스 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우울한 충동을 느낄 수 있다.
몸에 대한 이슈
평소 자기 몸이 창피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면 섹스 후 슬프거나 우울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보건학 박사이자 행복한성문화센터의 대표다. 감추거나 은밀했던 성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상담 센터와 유튜브 성교육 채널인 ‘배정원 TV’를 운영 중이다. 대한성학회 회장으로 누구보다 대한민국 사회에 건강한 성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 에디터김민지 (minzi@lether.co.kr)
- 도움말배정원 대표(행복한성문화센터)
- 참고webMD.com, www.psychologytoday.com,
- Schweitzer, R., O'Brien, J. & Burri, A. (2015). Postcoital dysphoria: Prevalence and Psychological Correlates.
- Journal of Sexual Medic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