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왜 비건일까?

2022-05-17

비건(Vegan)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떠오르고 있다. 대체육 시장이 성장하고 ‘비건’을 키워드로 내세운 화장품과 의류, 생활용품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비건이 되려는 걸까?

공생을 위한 비건

비건을 추구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한데 최근에는 환경을 생각해서 비건이 되겠다는 사람이 많다. 세계인의 고기 소비량을 충족하기 위해 운영되는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넓은 토지를 필요로 하는 축산업은 산림을 훼손한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70%가 축산업에 공간을 내주기 위해 벌목됐을 정도다. 인위적으로 모아 놓은 동물들의 하품과 방귀, 똥도 문제다. 대규모로 방출된 배설물은 자연과 어우러지지 못 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실제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를 내놓는다. 온실가스는 지구 가열화를 부추긴다.

어업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어업이 가능한 해양 지역 중 30%에서 남획이 이뤄지고 있다. 남획은 자연의 복원력을 넘어 해양 생물을 포획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해마다 9,300만 톤의 해양 생물이 사라진다. 해양 생물의 멸종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바다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조류가 급증하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류가 해로운 수준으로 늘어나면 바다의 푸른 빛은 탁하게 변하고 병원균이 창궐한다.

동시에 인간이 동물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동물성 식재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연한 육질의 소고기는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빈혈을 앓는 송아지에게서 얻을 수 있다. 부드러운 돼지고기도 마취없이 거세된 돼지에게서 얻는다. 우유는 강제로 임신당한 젖소에게서 나온다. 우유의 원래 주인인 젖소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분리된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성별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산채로 갈려 사료가 되고 암컷은 부리가 잘린 채 좁은 철창에 갇힌다. 그 속에서 평생 알을 낳다 도살된다.

음식뿐일까. 눈물샘이 없다는 이유로 자극성 실험에 이용되는 토끼, 사람을 잘 따르는 만큼 실험에도 많이 쓰이는 개, 연구뿐 아니라 수술 연습용으로 길러지고 안락사당한다는 돼지 등.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곳에서 동물을 괴롭히고 있다. 어쩌면 비건은 인간과 동물이 자연의 섭리 아래 공생하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비건과 채식주의, 비거니즘

비건은 정확히 무엇일까? 원래 비건은 가장 높은 단계의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채식주의자는 문자 그대로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영어로는 베지테리언(Vegetarian)이라고 한다. 채식주의자 하위에는 비건을 비롯해 여러 종류가 있다.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 락토(Lacto), 유제품과 달걀까지 먹는 락토 오보(Lacto-Ovo), 거기에 생선까지 먹으면 페스코(Pesco)다. 고기 중 붉은 고기만 먹지 않는 건 폴로(Pollo)라고 부르고, 꿀을 먹는 채식주의자는 스트릭트(Strict)라고 한다. 식물의 생존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열매와 잎, 곡식 등만 먹는 프루테리언(Fruitarian), 식물성 재료도 생식으로만 먹는 로 푸더(Raw Fooder)도 있다. 채식을 지향하지만, 간헐적인 육식을 허용하는 사람은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육식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이라고도 한다.

이 이름들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는 없다. 서양인들이 채식을 시작하면서 편의를 위해 구분한 것이므로 ‘정답’이 아니다. 플렉시테리언과 리듀스테리언의 정의만 비교해도 이것들을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식의 비중을 늘리기로 마음 먹었다면, 각자의 건강 상태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어떤 종류의 음식까지는 허용할 것을 스스로 정하기만 하면 된다.

굳이 나누자면 ‘비건’과 ‘비건 지향’ 정도만 구분해도 충분하다. 최근의 비건은 사전적 정의 외에 ‘비거니즘(Veganism)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의미가 확장돼 쓰인다. 여기서 비거니즘이란 ‘모든 형태의 동물 착취를 배제하는 철학이자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비거니즘은 식습관 외에도 생활 전반에 걸쳐 동물 소비를 거부한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가둬 기르는 동물원이나 동물 카페에 가거나, 인간이 쓸 물건을 만들기 위해 동물 실험을 거치는 행위를 전부 지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이미 인간을 위주로 형성되어 있고, 그 안에서 비거니즘을 완벽히 실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건 지향’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배경이다. 실제로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를 처음 설립한 도로시, 도널드 왓슨 부부는 비거니즘을 정의하면서 “최대한 가능한 선에서 실천할 것”을 덧붙인바, 무슨 이유에서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비건을 실천하고 동물 소비를 줄여나가는 일이 오늘날 ‘비건’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 에디터
    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참고
    <나의 비거니즘 만화>(보선)
  •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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