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성 질환에 관해 공부할 때마다 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문장이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여전히 여성 건강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많은 여성이 자기 몸, 맘, 성의 변화에 무감하고, 분명한 통증에도 병원에 가기를 꺼리며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는 이유일 테다. Doctor’s Say는 “이런 일로 병원에 가도 될까?” 혼자 끙끙 앓는 여성들을 위해, 렛허와 조현희 산부인과 전문의가 절대 사소하지 않은 여성 건강 가이드를 제안한다.
콘돔은 피임 기구이자 성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임신을 계획 중이라면 당연히 콘돔을 사용하지 못할 터. 문제는 ‘노콘’ 섹스로 인해 질염이나 방광염 등 여성질환에 시달리는 여성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임신 시도 중 질 건강 관리를 고민하는 여성들의 사연을 토대로 조현희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조언을 구했다.
사연 1. 콘돔 없는 성관계가 질염을 유발할 가능성
결혼 3년 차, 임신을 준비 중인 33세 여성 A씨는 최근 고민이 생겼다. 임신을 위해 콘돔을 착용하지 않고 관계를 하기 시작하자마자 질염에 걸린 탓이다. 돌아보면 남편과 연애 중 처음 성관계를 했을 때도 피임약만 믿고 ‘노콘’을 했다가 바로 질염에 시달려 그 다음부터 콘돔을 필수로 착용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임신을 위해 콘돔을 착용할 수도 없는 상황. 게다가 질염을 완전히 치료하기 전까지는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것에도 초조한 마음이 든다. 임신이 가능한 시간이 줄어드는 기분이 들어서다. 임신 시도 중 반복되는 질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질 분비물의 산도가 깨지면 바로 질염이 생길 것 같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한 여성의 질이라면 정액이 들어와도 산성도에 지속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거든요. 알칼리성 분비물이 들어와도 중화가 되기 때문이죠. 질내 사정을 해도 대부분 하루이틀 안에 정상적인 질의 산도를 찾습니다.
여기서 잠깐, 남성의 정액과 쿠퍼액이 알칼리성인 이유에 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네요. 남성의 요도는 평상시 소변이 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산성을 띄고 있는데, 산성인 곳에서는 정자가 살아서 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쿠퍼액이 정자 생존율을 높여주는 기능을 합니다. 다만 쿠퍼액의 알칼리 정도는 남성 건강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알칼리성이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질의 산성도 균형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계 후 바로 질을 세정하는 것이 한 방법입니다. 또한, 평소 질의 산도를 유지해주는 유산균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다만, 관계후에 바로 질을 세정하면 임신율이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으므로 임신을 시도 중일 때는 질 안까지 씻지 말고, 흘러내리는 액체만 씻어낸다는 생각으로 외음부를 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 내 사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염은 대부분 세균성 질염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태아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임신이 확인된 이후의 세균성 질염은 질정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으며, 세균성 질염은 건강한 여성에서 자가 치유되는 경우도 매우 흔합니다. 임신 중에 세균성 질염이 있는 경우 조산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해 임신 중 세균성 질염을 검사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질의 산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내 몸의 상태에 따라서 변화합니다. 평소 건강한 음식을 먹고 면역력을 길러 외음부를 잘 관리하기만 해도 문제 발생율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건강한 여성의 질은 산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태아에게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질염도 있습니다. 대부분 성병으로 인한 질염들인데요. 트리코모나스 질염 같은 경우에는 조산통과 조산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임신 중 아기에게 감염증을 유발하는 성병의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매독을 들 수 있습니다. 매독은 태반을 지나 아기에게 감염을 유발하며, 임질균, 클라미디아, 헤르페스 등도 출산 시 산도(아기가 태어날 때 지나가는 통로, 질)에서 아기로 감염증을 발생시킵니다. HIV 같은 경우에는 태반을 거쳐 아기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산도에서 감염도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임신을 시도하기 전에는 전반적인 검사를 받고 이를 치료하는 것이 좋으며, 임신 성공 후 임신한 상태에서 관계할 때부터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헤르페스 감염으로 입술에 수포가 생긴 상태에서 구강성교를 하는 경우 외음부로 전염될 수 있습니다. 헤르페스가 있는 파트너와 관계 시 전염될 가능성은 3~10%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연 2. 임신 시도 중 반복되는 방광염을 해결하는 법
29세 여성 B씨는 임신을 계획하며 건강 관리에 부쩍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커피와 술도 끊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마주하게 됐다. 바로 방광염이다. 남편과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한 지 얼마되지 않아 방광염이 생긴 것. B씨는 우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보려고 해 봤다. 하지만 B씨는 성관계 전후로 깨끗이 씻고, 성관계 후에는 바로 화장실에 가 소변을 보는 일을 절대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인은 남편인 게 아닐까? 마침내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B씨는 따갑고 불편한 방광만큼 불편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관계 후 1~2일 내에 발생하는 방광염은 대장균으로 인한 것으로, 외음부와 항문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균입니다. 성관계시 피스톤 운동과 장시간의 삽입으로 인한 외음부와 질의 마찰성 염증반응, 요도 주변 피부의 경미한 손상 등이 대장균이 외음부에서 요도로 들어갈 수 있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외음부에서 요도로 대장균이 올라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의 방어막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대장균이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파트너의 위생 상태 역시 방광염 발생에 원인일 수 있습니다. 관계 전에 남녀 모두 생식기 주변을 청결히 하는 것은 방광염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여성이 평소 질 분비물이나 애액이 적은 편이라면 요도 입구 주변의 경미한 손상 발생율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관계 전 충분한 전희로 애액 분비를 증가시키거나 윤활젤 등을 사용하는 것도 예방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청결이 제일 중요합니다. 관계전에 외음부와 생식기 주변을 잘 씻어야 해요. 질 분비물이 많은 상태에서 관계를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여성이 준비가 될 때까지 충분한 전희를 갖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만약 관계 중 항문 성교를 시도하는 경우에는 콘돔을 이중으로 사용하고, 이후 생식기를 반드시 청결히 한 후에 질 삽입 성교를 시도해야 합니다.
여성도, 남성도 되도록 외음부는 미온수로만 씻어내는 것을 권장합니다. 항문 주변은 약산성 샤워 젤로 가볍게 씻어도 좋지만, 이 부분 역시 지나치게 세정하는 것은 도리어 좋지 않기 때문에 박박 문지르거나 장시간 씻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단, 남성 생식기 주변은 주름진 부분들이 많을 수 있고 특히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 귀두 주름 등에 균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세척과 청결에 주의를 요합니다.
정상적인 면역 상태를 가진 여성이 대장균으로 인한 단순 방광염에 걸린 경우, 태아에게 문제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임신 중 방광염이 생겼을 때에는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임신 중 방광염이 생겼을 때에는 물을 많이 마셔 소변양을 늘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알코올, 카페인, 청량 음료, 감귤류의 주스 등 방광을 자극할 수 있는 음료는 피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만약 방광염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여 콩팥 쪽으로 염증이 퍼지면 신장염과 그로 인한 폐혈증이 생길 수 있으며, 이는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굉장히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이상 증상 발생 시 인근 병원을 내원하여 정확한 검사와 치료를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두 병원 어디를 가셔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만, 비뇨기과는 여성 염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병원을 고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질강처치료(질 소독치료)를 원활하게 받기를 원하시면 산부인과 쪽이 좀 더 편할 거예요.
조현희
산부인과 전문의
자궁 난소질환 로봇수술의 권위자.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로봇수술센터장을 거쳐 현재 청담산부인과의원 로봇수술센터를 맡고 있다. 산부인과 교과서에서조차 ‘원인 불명’으로 치부하는 여성 질환의 근본을 파고들기 위해 오래 연구한 끝에 최근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자궁·난소·유방 질환 재발 방지 생활요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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