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7곳을 다니며 기록한 치료 후기를 공유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8년 차 B
92년생, 기혼, 우울감 & 자살 사고
중학생 때부터 심각한 우울감과 자살사고를 겪었어요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돼서도 자살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하루는 대학교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심리상담사 선생님께서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보인다. 병원에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 후 약물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라며 그때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선입견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난독증까지 찾아왔습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될 만큼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울증이 심하면 인지 기능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이런 정보를 알 방법도 없어서 ‘드디어 뇌가 이상해졌구나. 정신 병원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난독 증상을 계기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됐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만 7곳을 다녔어요
개인병원부터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까지 총 7곳의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녔습니다.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 2곳, 병원(2차 의료기관) 1곳, 의원(1차 의료기관) 4곳을 옮겨 다녔어요. 저 같은 경우 전문의 선생님과 잘 맞는지, 병원의 위치도 고려해 여러 곳을 다녀봤네요. 첫 병원은 비교적 집과 가까우면서 가장 큰 병원이라 선택했어요. 이후 사정이 생겨 병원을 바꿔야 했는데, 이때 역시 집이나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선택했습니다. 상급종합병원을 내원하게 된 계기는 입원이 목적이라 정신과 병동이 있는 병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왕이면 크고 시설이 좋은 병원에 입원하자는 마음에서 골랐어요. 외래 진료는 사회에서 일반 생활을 하며 필요시 병원에 방문하여 치료받는 형태인데, 입원 치료는 병실에서 생활하며 24시간 케어받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초진이 어땠는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아요
초진 당시 너무 우울하고 정신이 없었기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요. 함께 간 엄마가 저 대신 선생님의 질문에 답할 만큼이요. 병원마다 진료 방식이 달랐는데요, 크게 세 가지로 기억해요. 자기 보고 없이 바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면담을 통해 진료를 보는 경우, 우울성 자기평가 척도 등 몇 가지 자기보고 형식의 체크리스트 작성 후 의사 선생님 진료를 보는 경우, 자기보고 형식의 체크리스트와 더불어 일명 ‘스트레스 검사’라고도 불리는 HRV 검사(자율신경계 검사)까지 받은 후에 의사 선생님 진료를 받은 적이 있어요. 본인이 방문할 병원의 초진 방식이 궁금하다면, 방문 전 병원에 전화해 물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병원마다 진단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2014년에는 ‘적응장애’, 2017년에는 ‘양극성 II 장애’, ‘경도 우울에피소드’, 2021년에는 ‘우울증 NOS’, ‘상세 불명의 기분[정동] 장애’, ‘양극성 II 장애’로 진단받았습니다. 우울감과 자살 사고를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진단은 계속해서 바뀌었어요, 제 경험을 비추어 정신과적 진단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본인이 가진 병의 병명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에 따른 증상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꾸준히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게 맞는 처방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7 곳 중 한 곳은 상담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대화조차 없다시피 하고 약물만 처방해 주는 곳이라 아쉬웠습니다. 일명 ‘3분 진료 병원’이라고 해요. 저는 이런 병원과는 맞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병원은 심리상담센터가 아니기 때문에 밀도 높은 상담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복용 중인 약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부작용 또는 효과에 대해서만이라도 이야기 나누다 보면 최소 몇 분은 지나기 마련입니다. 그저 약물만 처방한 후 내보내는 병원은 피하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자율신경계 검사인 HRV 검사가 필수였던 다른 병원은 해당 검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점이 아쉬웠어요. HRV 검사는 비급여 항목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거든요.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이 저와 가장 잘 맞는데, 저의 증상을 생물학적 원인에만 치우치지 않고 심리적 어려움과 고통 관점에서도 접근해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항우울제와 항전간제, 항정신병제를 복용하고 있어요
약 7년 가까이 항우울제, 항전간제(기분안정제) 조합으로 하루 1번 복용해왔어요. 현재는 항우울제, 항전간제(기분안정제), 항정신병제 이 세 가지 조합으로 하루 1번 복용하고 있습니다. 필요시 항불안제(신경안정제) 추가해서 복용한 적도 있고요.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꼼꼼하게 적어두는 편인데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동안 복용했던 약과 부작용을 공유하자면.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라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어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는 것과 별개로 심리상담을 주 3회 받고 있어요.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라는 심리치료예요.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에 없는 치료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약물치료를 위한 상담만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로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병원은 많지 않아요. 제가 받고 있는 심리치료는 심리상담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심리상담에도 여러 가지의 기법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상담 기법 중 하나가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이며, 저는 그 기법을 사용한 상담을 받고 있는 거예요.
치료는 계속 받는 중입니다
과연 끝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평생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치료의 ‘끝’이라는 목표를 바라보고 달리기보다는 치료를 통해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과 증상을 완화시켜 조금 더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증상이나 컨디션은 안정적이고 괜찮은 편입니다. 직장생활도 꾸준히 잘 하고 있으며, 사회생활에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요. 8년간 꾸준히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며 처방받은 약물을 매일 복용해 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 꾸준히 다닐 예정입니다. 언젠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저의 판단과 그에 더해 더 이상 치료받지 않아도 된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의견이 일치하는 날, 그 날이 정신건강의학과 마지막 방문일이 되겠지요.
- 에디터김민지 (minzi@lether.co.kr)
- 디자인권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