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Her SPEAK

질은 그냥 질이에요

2021-08-31

여성의 외음부와 질에 덧씌워진 사회적 시선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숨겨야 하거나, 예뻐야 하거나. V존 케어 전문 브랜드 바솔의 신다영 대표는 포장하거나, 감춰야 할 이유 없이 질은 그냥 질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Q 사람들은 Y존과 V존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바솔은 V존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만 V존, Y존을 함께 사용하더라고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Y존은 원피스나 스커트가 몸에 닿아서 생기는 형상을 두고 부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모습을 가려주는 속바지나 속치마에 대한 이야기가 Y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따라붙고요. 그런데 Y존은 그 부분이 보이면 부끄럽다는 전제를 두고 한 말이니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또 Y존은 남성도 해당되고요. 바솔은 버자이너 솔루션(Vagina Solution)의 줄임말이에요. 버자이너(Vagina)는 여성의 생식기를 뜻하는 단어로, 여성 생식기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든다는 원칙을 문자 그대로 담은 브랜드 이름이에요. 해외에서는 비슷한 단어로 벌버(Vulva)라고도 해요. 두 단어만 봐도 V존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어요.

Q 바솔 홈페이지의 ‘버자이너는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됩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어요. 문구가 나오기까지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바솔을 창업하기 전 화장품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어요. 다양한 화장품이 세상에 나고 지는 걸 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V존 케어 제품들이 과대광고로 포장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를테면 ‘조임이 개선돼 남편이 좋아한다’, ‘18세로 돌아가요’, ‘하얗게 된다’ 등 섹슈얼한 부분을 강조하는 거죠. 조임이 좋아야 하고, 색이 맑아야 하고, 좋은 향기가 나야만 하는 곳인 것처럼 얘기하는 게 이상했어요.

질과 외음부는 개개인에 따라 모양, 색상이 다 달라요. 건강 외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곳이죠. 그저 질과 외음부는 쓰라리거나 불편하지 않으면 돼요. 성생활 파트너를 위한 곳이 아니고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Q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여성 건강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정보도 많아졌어요. 변화를 느끼나요?

지난여름에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말자는 ‘낫 샤이(Not Shy) 캠페인’을 했어요. 그런데 솔직하게 질이면 질, 외음부면 외음부라고 하지 왜 영어를 쓰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대다수가 MZ세대였는데, 20대 초반 여성 중에는 오히려 ‘그런 단어를 말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제 예상보다 젊은 여성들의 인식은 훨씬 더 앞서 있었는데 몰랐던 거죠. 반면 중년으로 갈수록 여전히 V존 케어에 대해 모르는 분이 많더라고요. 씻는 방법부터 관련 제품이 판매되는 것도 모르는 분들이 있었죠. 연령에 따라 건강 정보나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걸 알았죠.

Q 듣고 보니 한글을 쓰는 게 더 취지에 맞고 효과적인 것 같은데, 왜 영어 단어를 사용했나요?

사실 저희 웹사이트에서는 질, 외음부 단어를 사용해요. 그런데 광고는 상황이 달라요. 직접적으로 단어를 언급하면 의료법상 과대광고 소지가 있어서 사용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의견 주신 고객님께 사실대로 전달하고 웹사이트에서는 우리말을 쓰고 있으니 방문해달라고 하나하나 댓글을 달았어요.

Q 외설적인 단어도 아닌데 광고가 안 된다니, 어려운 점이 많겠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단어뿐 아니라 이미지 사용도 특별한 기준 없이 검열에 걸리곤 해요. 사람들은 질, 외음부라는 단어를 이제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세상의 기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V존 외에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기준이 좀 더 개선됐으면 하는 점이 있나요?

초등학생 딸이 있어요. 어느 정도 큰 후에 외음부 씻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지금은 익숙하게 씻게 됐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수영을 하고 샤워실에서 씻는데, 다른 아이들이 ‘쟤 저기 씻어’ 하더라고요. 8~9세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이었는데, 그 나이만 돼도 외음부 씻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어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는 곳, 쉬쉬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고정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몸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Q ‘몸교육’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보통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성교육은 정자, 난자가 만나서 어떻게 임신하게 되는지 알려주다가 결국엔 조심해야 한다고 마무리하잖아요. 근데 그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 연령대는 대부분 초경도 시작하기 전이에요. 순서가 안 맞는 거죠. 그전에 내 몸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생리 현상이 일어나고, 성장하면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임을 알려주는 거예요. 여성이기 때문에 책임질 일들이 많잖아요. 성(sex) 이전에 내 몸부터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만약 몸교육이 일반화되면 여성 건강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개선될까요?

많은 여성들이 이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산부인과에 쉽게 가는 등 자신을 돌보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할 때 아무렇지 않게 ‘나 감기 걸렸어’라고 말하듯 ‘나 질염이래’라고는 쉽게 말하지 않죠.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워지길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에디터
    서희라 (seohr@lether.co.kr)
  • 사진
    맹민화, 바솔
  • 디자인
    박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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