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Say

질 넓이와 성감의 상관관계 (feat. 질 필러, 이쁜이 수술)

2025-04-16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성 질환에 관해 공부할 때마다 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문장이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여전히 여성 건강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많은 여성이 자기 몸, 맘, 성의 변화에 무감하고, 분명한 통증에도 병원에 가기를 꺼리며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는 이유일 테다. Doctor’s Say는 “이런 일로 병원에 가도 될까?” 혼자 끙끙 앓는 여성들을 위해, 렛허와 조현희 산부인과 전문의가 절대 사소하지 않은 여성 건강 가이드를 제안한다.

‘질이 넓은 편이라 저도, 파트너도 만족할 만한 성감을 느끼지 못해요. 질 성형 수술을 받아야 할까요?’

섹스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질문 글의 유형 중 하나다. ‘질이 넓은 여성은 조이는 힘이 부족하다’거나 ‘관계를 많이 한 여성일수록 질이 헐거워진다’ 심지어 ‘타고나기를 넓은 질을 가진 여성과의 관계에서는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없다’ 등 고리타분한 속설은 여전히 정설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 같은 속설 모두 성관계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탓을 은근슬쩍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파트너와의 섹스 만족도를 위해 성형 수술을 결심해야 할 만큼 여성의 질 넓이가 성감에 미치는 영향이 클까? 비단 성감만 아니라 건강 면에서도 질 넓이가 중요할까? 이번 시간에는 여성의 질 넓이와 성감, 그 상관관계를 알아본다.

 

질, 그곳이 알고 싶다

질은 골반 근육으로 이루어진 관으로, 외음에서 자궁까지 이어진다. 이 관의 평균 지름은 2.4~6.5cm, 평균 길이는 6~7.5cm이며, 그 내부는 주름진 점막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이 점막의 주름이 펼쳐지며 내부 공간이 확장된다.

  • ① 성적으로 흥분한 경우

  • ② 출산(질 분만)하는 경우

 

성적 흥분 시 질 넓이와 압력

성적으로 흥분하는 동안 질 내부 공간이 확장된다면, 흔히 ‘조임’이라고 부르는 질의 압력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우선 두 가지 현상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질의 공간이 확장된다는 것은 파트너의 음경이나 섹스토이와 같은 외부의 요소가 들어올 만큼 점막의 주름이 충분히 늘어난다는 의미다. 이때 질의 둘레는 최대 15cm까지, 길이는 최대 16cm까지 늘어날 수 있다.

동시에 성적 흥분감을 느낀 여성의 몸에는 혈류가 증가하며 질 점막에도 혈액이 몰리는데 이로 인해 질 내부의 벽이 두꺼워지면서 질 안에 삽입된 대상(파트너의 음경이든 섹스토이든)을 조이듯이 압박하는 것이다.

따라서 질 둘레와 질벽이 조이는 듯한 압박감은 별개의 문제다. 평균 여성보다 넓은 질 둘레를 가진 여성이라도 성적으로 흥분하면 질벽이 팽창하며 질 안에 삽입된 대상을 충분히 압박할 수 있다. 물론 삽입된 대상의 직경이 애초에 여성의 질 둘레보다도 작은 상태라면 상호 압박감을 느끼기 힘들 테지만 말이다.

한편, 여성이 삽입 섹스 혹은 삽입 자위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고민이라면 질 둘레를 탓하기보다 질의 근육, 즉 골반저근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여성은 출산하거나 완경기 전후로 골반저근의 힘이 떨어지며 질 내부를 컨트롤하는 힘도 약해질 수 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케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질 둘레와 성감에 관해 자주 묻는 질문을 모아 조현희 청담산부인과의원 원장에게 물었다.

Q. ‘관계를 많이 할수록 질이 헐거워진다’는 속설은 사실인가요?

질 내부의 탄력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합니다. 질 주변 근육이 지나치게 늘어나거나 이완됐을 때 이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단순히 성관계를 많이 했다고 해서 이 근육층이 손상될 일은 현저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Q. 선천적으로 질 둘레가 좁은 여성은 성감이 예민하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맞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우선 ‘성감’이라는 것 자체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습니다. ‘성감이 예민하다’거나 ‘둔하다’라는 표현은 오로지 주관적 가치 판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질 둘레와 성감의 민감도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성감에 관해 첨언하자면, 남성의 음경 사이즈가 여성의 질 둘레에 비해 많이 작거나 발기 시 강직도가 떨어진다면 상대적으로 좁은 둘레의 질이 남성 본인 성감에는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남성의 음경 사이즈가 클수록 여성의 성감도 더 증가할 수 있습니다.

성관계의 만족도를 이야기하면서 질 둘레나 넓이에 집착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삽입 섹스의 도구로 여기는 남성우월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고방식이지요. 성관계에서 만족도라는 것은 단순히 삽입하는 동안 ‘얼마나 꽉 끼는지’ 하나로 판단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성관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는 그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평상시 사이가 좋은 부부가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성관계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성기 사이즈나 넓이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정서적 관계, 감정 등이 성관계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죠. 만일 누군가 관계 시 질의 조임이 부족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한다면, 여성을 지나치게 대상화해 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겠습니다.

Q. 선천적인 질 둘레가 좁을수록 삽입 성관계 시 남성의 음경을 압박하는 정도가 큰가요?

질 둘레가 좁은 편이라면 음경을 삽입했을 때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겠습니다만, 관계 시 압박감을 좌우하는 척도는 ‘질 둘레’가 아니라 ‘질 근육의 힘’입니다. 선천적으로 넓은 질이라도 내부 근육이 발달해 있다면 관계 시 근육을 조임으로써 더 강한 압박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좁은 질이라도 근육이 발달해 있지 않다면 압박감이 적을 수 있습니다.

Q. 선천적으로 질 둘레가 넓은 경우 출산(질식분만)이 수월할까요?

질 둘레와 출산은 무관합니다. 분만 시 중요한 것은 질의 둘레가 아니라 골반뼈의 크기와 골반이 이완되는 정도입니다. 질은 분만하는 동안 호르몬의 영향으로 자연히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선천성 질협착증(섬유 조직의 형성으로 질이 비정상적으로 좁고 짧아진 상태)이 있다면 질식 분만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Q. 질 둘레를 좁히거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필러 등 성형 시술, 수술을 받는 여성도 적지 않습니다. 부작용은 없는지, 성감을 위해 해당 시술, 수술을 받는 것이 의학적으로 권장될 만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권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수술이든 부작용의 위험을 수반합니다. 특히 ‘이쁜이 수술’이라고들 부르는 질 성형 수술은 추후 질 내부에 섬유화가 진행되며 질 협착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질압을 높여준다는 질 필러 역시 시술 후 통증을 느껴 필러를 다시 제거하러 오는 분들이 많고요. 더구나 완경 후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질이 건조해지고 좁아지기 때문에 젊었을 때 받은 수술이나 시술의 부작용으로 뒤늦게 고통받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파트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파트너의 만족도를 높여주기 위해 질 성형 수술 혹은 시술을 받겠다는 여성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술, 시술로 성관계가 좋아지고 파트너와의 관계도 극적으로 개선되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부부, 혹은 연인 사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비단 성관계만 아닙니다. 물론 성관계 역시 중요한 매개체이기는 하나, 설사 성관계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정서적 유대, 감정적 소통 등 다양한 요인으로 돈독히 유지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성관계 만족도를 높일 목적으로 이쁜이 수술이 유행하는 나라 자체가 매우 드뭅니다. 만일 여성 본인이 질이 너무 넓거나 근육이 지나치게 이완돼 불편함을 느낀다면 수술을 결심하기 이전에 질 근육, 골반저근 단련을 우선 시도하기를 추천합니다.

조현희

산부인과 전문

자궁 난소질환 로봇수술의 권위자.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로봇수술센터장을 거쳐 현재 청담산부인과의원 로봇수술센터를 맡고 있다. 산부인과 교과서에서조차 ‘원인 불명’으로 치부하는 여성 질환의 근본을 파고들기 위해 오래 연구한 끝에 최근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자궁·난소·유방 질환 재발 방지 생활요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 에디터
    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참고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겐 달, '질의 응답', 김명남 옮김(열린책들, 2019)
  • 이아라 기자, "여성의 ‘이곳’ 사이즈, 성감에 영향 준다… 탄력 되돌릴 순 없나?", 헬스조선, 2024.2.20., (healt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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