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성 질환에 관해 공부할 때마다 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문장이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여전히 여성 건강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많은 여성이 자기 몸, 맘, 성의 변화에 무감하고, 분명한 통증에도 병원에 가기를 꺼리며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는 이유일 테다. Doctor’s Say는 “이런 일로 병원에 가도 될까?” 혼자 끙끙 앓는 여성들을 위해, 렛허와 조현희 산부인과 전문의가 절대 사소하지 않은 여성 건강 가이드를 제안한다.
우리에게 냉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질 분비물. 매일 속옷에 조금씩 묻어나는 질 분비물은 이론상 지극히 정상적인 생리 현상이다. 하지만 속옷이 젖을 만큼 양이 많거나 끈적이는 질 분비물을 마주할 때면 불쾌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질 분비물의 정상과 비정상 상태를 바르게 구분하고, 평소 질 분비물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여성들의 고민에 답해본다.
질 분비물의 정체?
가임기 여성의 질에서 분비하는 점액질을 말한다. 이 점액질에는 점막 세포와 질 내 산성도 균형을 맞추는 복합 유산균 등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질 분비물은 수명을 다한 점막 세포를 바깥으로 내보내고, 외부 병원균이 질 내부에 침투하거나 세균, 박테리아 등이 증식하는 것에 맞서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성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외부 자극과 마찰에 질, 외음부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질 분비물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정상적인 질 분비물
✔ 몸이 건강할 때의 질 분비물은 투명하다. 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정상 분비물도 있다.
✔ 배란기에는 희끄무레한 점액이 분비된다. 배란 점액이라고 부르는데 배란 4~5일 전에는 끈적이고, 배란 2~3일 전에는 묽은 형태로 분비된다. 이 시기에는 평소보다 분비물의 양이 늘 수 있다.
✔ 배란기(배란혈)와 생리 전후(생리혈), 임신 초기(착상혈)에는 피가 섞인 갈색 분비물이 나오기도 한다. 역시 정상이다.
✔ 정상적인 질 분비물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다만 여성의 질은 약산성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요구르트처럼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날 수도 있다.
건강 이상을 의심할 만한 질 분비물
✔ 냄새가 나지 않는 회색, 노란색 분비물이 나온다면 세균성 질염을 의심할 수 있다.
✔ 냄새가 나지 않고 리코타 치즈처럼 덩어리진 하얀 분비물은 칸디다 질염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 냄새가 심하고 콧물처럼 점성 있는 회색, 노란색, 초록색 분비물은 클라미디아 감염증, 임질 등 성매개감염병을 의심할 수 있다.
✔ 거품이 섞인 초록색 분비물은 성매개감염병인 트리코모나스질염(증)일 가능성이 높다.
Doctor’s Say
질 분비물에 관한 여성들의 고민과 질문에 산부인과 전문의 조현희 청담산부인과의원 원장이 답한다.
학계에 따르면 24시간 동안 생성되는 질 분비물의 평균 양은 2~5ml입니다(0.5~1티스푼). 물론 이것은 이론적인 수치로, 건강한 사람이어도 질 분비물의 양이 남들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분비물의 양이 많은 것으로는 비정상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대신 분비물의 색깔이나 점성, 냄새가 이전과 확연히 다르면서 양이 많아졌다면 질환이나 염증의 증상일 수 있으므로 병원에 방문하여 이상 소견이 있는지 확인하기를 권합니다.
면으로 만들어져 세탁해 재사용할 수 있는 생리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한, 젖은 상태의 생리용품을 오래 착용하는 경우 외음부 피부가 습해지면서 발진, 염증, 세균 증식의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주 갈아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알코올로 인해 혈액순환이 증가하면 분비물이 더 많아진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과음은 오히려 몸의 수분을 빼앗아 질 점막을 건조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석대로라면 분비물에 피가 약간 비치는 날도 생리주기에 포함해야 합니다. 주기를 기록할 때 살짝 비치는 날과 본격적으로 생리혈이 나오는 시기를 구분해 보세요.
관계 후 출혈은 관계 시 생긴 상처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밖에 여러 질병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관계 후 출혈은 자궁경부암의 대표적인 초기 증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관계 후 피가 섞인 분비물이 나왔다면 꼭 산부인과에 방문하여 검사해 보세요.
정상적인 질 분비물은 호르몬에 반응하는 주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르몬의 변화를 유도하는 피임약을 복용하는 동안 질 분비물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함유한 경구 피임약은 자궁 경부 점액을 걸쭉하게 만들어 정자가 자궁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식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경구피임약 복용 시 하얗고 불투명한 분비물이 나오거나, 분비물의 양이 평소보다 늘거나 줄어드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단순히 점도와 양의 변화만 아니라 냄새, 소양감(간지러움), 통증 등이 추가로 나타난다면 산부인과에 방문해 검사해야 합니다.
배란기에는 정자가 난소까지 무사히 도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점액이 분비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배란기의 질 분비물이자 배란 점액인데요. 만일 배란 점액이 적기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난임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호르몬 상태나 자궁 상태를 확인해 보기를 권합니다.
여성의 질 입구에는 바르톨린 샘이란 곳이 있습니다. 성적으로 흥분하여 몸의 혈류량이 증가하면 바로 이 바르톨린 샘에서 매끈한 분비물이 나와 윤활 작용을 하도록 돕는 건데요. 우리가 흔히 애액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영어로는 질 윤활액(vaginal lubrication)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질 분비물과 마찬가지로 질 윤활액도 반드시 투명한 것만은 아닙니다. 하얀색을 띠고 있더라도 정상이에요.
조현희
산부인과 전문의
자궁 난소질환 로봇수술의 권위자.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로봇수술센터장을 거쳐 현재 청담산부인과의원 로봇수술센터를 맡고 있다. 산부인과 교과서에서조차 ‘원인 불명’으로 치부하는 여성 질환의 근본을 파고들기 위해 오래 연구한 끝에 최근 <환경호르몬과 여성질환:자궁·난소·유방 질환 재발 방지 생활요법>이라는 책을 펴냈다.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참고Kristine Thomason, <How Much Vaginal Discharge Is Normal?>, health(www.health.com)
- <Hormonal health – clues made clear>, Jean Hailes for Women’s Health(www.jeanhailes.org.au)
- <Vaginal Discharge>, Cleveland Clinic(my.clevelandclinic.org)
- Clara Wang, <How Do Weed, Alcohol and Smoking Affect Vaginal Chemistry?>, (www.intimina.com)
- 정수연, <질 좋은 책>(위즈덤하우스, 2019)
- 일러스트손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