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후 다음 생리까지 혹시나 불안에 떨면서도 선뜻 피임을 하지 못했던 건 여성 피임법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일 것이다. 피임에 관한 온갖 오해들을 모아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물었다.
확률이 낮긴 하지만 생리 중에도 임신할 수 있습니다. 정자가 여성 몸에 들어가면 3~5일 살아 있는데 배란 시기와 겹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생리가 규칙적인 사람이라도 스트레스 등 다른 원인으로 배란이 불규칙하게 일어날 수 있고, 또 생리 기간이 긴 사람은 생리 중에도 배란이 될 수 있어요. 임신을 원치 않는다면 생리 중에도 피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생리는 자궁내막 세포가 탈락되어 빠져나오는 것으로 몸속 노폐물이 배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생리는 나쁜 피가 아니고, 피임으로 생리량이 줄거나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은 건강과 무관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과거 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하면 유방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당시 연구에 사용한 것은 고함량 호르몬 피임약으로, 지금 출시되는 저함량 호르몬 피임약과는 차이가 큽니다. 오히려 최근 연구들을 살펴보면 경구피임약은 암 발생과 연관이 없고 나아가 난소암, 자궁내막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혹시 모를 호르몬 부작용이 걱정된다면 의사와 상담해 그에 맞는 피임법을 사용하면 됩니다.
경구피임약은 가임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복용을 중단하면 2주 안에 원래의 생리주기로 돌아오고 배란이 이루어집니다. 경구피임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호르몬 피임법이 임신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임력을 회복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피임법도 있으니 임신을 계획했다면 최소 3개월 전에 피임을 중단하는 게 좋습니다.
임신 사실을 모르고 피임약을 복용한 여성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태아 기형입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고 통계상으로도 기형 발생률은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약물과 관계없이 기형이 생길 수 있는 위험률은 3%이고, 임신 중 약물로 기형이 발생할 확률은 1%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35세 이상 흡연자에게 경구피임약을 투여해서는 안 된다’고 공지했습니다.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혈관 질환 발생률이 최대 5배까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금기사항에 해당하는 여성은 경구피임약 대신 자궁 내 삽입 같은 피임법을 권합니다. 이외에 고혈압, 당뇨병 같은 질환이 있다면 의사와 상담해 피임약을 복용해도 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과거 피임약 연구에서 체중 증가에 대한 부작용 보고가 있었지만 피임약과 체중 증가는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 학술지 <피임(Contraception)>에 약의 영향보다는 유전에 의해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린 바 있습니다. 피임약을 먹고 싶지만 체중 변화가 두렵다면 의사와 상담 후 수분과 나트륨 배출을 돕는 ‘드로스피레논’ 성분이 함유된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경구피임약을 포함해 여성 피임법 모두 성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콘돔 사용이 유일한 성 매개감염의 예방책입니다. 그러니 따로 피임을 하더라도 콘돔을 사용해야 합니다.
과거 고용량 피임약 복용 시 에스트로겐 저하 및 질 건조증으로 인한 성교통으로 성욕 감퇴 증상이 언급됐지만 최근 시판되고 있는 저용량, 초저용량 피임약의 경우 그로 인한 부작용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습니다. 오히려 임신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성생활에서의 빈도와 만족도가 더 올라갔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 약리학적 부작용보다는 심리학적인 긍정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수정
대구 구수정산부인과 원장
부인과 질환, 청소년&갱년기 클리닉, 여성암 검진 등 풍부한 경험을 지닌 여성 전문의이자 기본을 지키는 동네 의사로서 소신껏 진료하고 있다.
- 에디터서희라 (seohr@lether.co.kr)
- 자문구수정(대구 구수정산부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