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2025 프라이드 먼스 : 수지 브라이트, 그 후 40년

2025-06-04

2025년 6월, 프라이드 먼스를 맞아 렛허가 섹슈얼리티와 정체성의 경계를 넓혀온 선구자를 다시 바라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와 섹스 포지티브 페미니즘을 대중 문화 속에서 구체화한 여성, 수지 브라이트(Susie Bright)를 조명합니다.

수지 브라이트는 미국의 작가이자 성교육자, 에로티카 편집자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성(性)을 둘러싼 대중 담론에서 ‘여성의 욕망’과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인물이다. 현재도 개인 웹사이트와 팟캐스트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 있겠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는 이성애 중심의 성 담론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 간의 성적 관계성과 욕망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성적 대상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방식, 쾌락의 정의, 그리고 몸과 감정의 언어 자체를 기존 틀에서 완전히 탈피해 재구성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섹스토이숍 직원에서 섹스퍼트로

수지 브라이트의 여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곳은 굿바이브레이션이다. 조아니 블랭크(Joani Blank)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오픈한 이 섹스토이숍은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페미니즘 지향적 공간이었다. ‘섹스토이숍을 싫어하는 사람도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섹스토이숍’이라는 블랭크의 철학 아래, 음침하고 불쾌한 분위기의 포르노그래피를 철저히 배제했다. 수지 브라이트는 이곳에서 첫 섹스토이를 구매했고, 곧 직원이 되었다.

굿바이브레이션은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수지 브라이트에게 자신의 몸과 성적 즐거움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곳이다. 이곳에서 수지 브라이트는 여성의 관점으로 구성한 최초의 섹스토이 카탈로그를 기획하고,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에로틱 영화를 큐레이션하는 굿바이브레이션 에로틱 비디오 라이브러리를 설립하기도 했다.

 

금기를 깬 한 권의 잡지

굿바이브레이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지 브라이트는 1984년 레즈비언 독자를 위한 최초의 섹스 매거진 <온 아워 백스(On Our Backs)>를 창간했다. 에이즈 팬데믹으로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했던 1980년대 미국에서 ‘성적 욕망 표현’은 곧 ‘남성 중심 사고’로 간주되었고, 레즈비언의 노골적인 욕망 표현은 심지어 페미니스트들로부터도 거부감을 샀다. 정치적 정체성과 성적 욕망 사이의 긴장이 팽팽했던 시기에 수지 브라이트는 이 간극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침묵을 깬 목소리

“레즈비언도 섹스토이를 사용하고, 포르노를 보며, 성적 판타지를 가집니다”

수지 브라이트의 주장은 단순했지만 강렬했다. <수지 섹스퍼트(Susie Sexpert)> 칼럼을 통해 딜도 사용법부터 오럴 섹스 테크닉까지, 그동안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웠던 주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많은 여성의 숨겨진 호기심에 응답했다.

이 칼럼을 묶은 그녀의 대표 저서 <수지 섹스퍼트의 레즈비언 섹스 월드(Susie Sexpert’s Lesbian Sex World)>는 레즈비언의 성생활을 다룬 최초의 실용서로, 당시 전혀 인지되지 못했던 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평가 받는다.

수지 브라이트의 글이 큰 파급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글쓰기 방식에 있었다. 학술적 이론에서 벗어나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언어로 성을 다루었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성을 신성시하거나 천박하게 다루지 않고,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설명함으로써 많은 여성의 공감을 얻었다.

경계를 넘나든 영향력

이후 수지 브라이트의 활동은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넘어섰다. 최초의 여성 에로티카 시리즈 <헤로티카(Herotica Series)>를 창간하고, <베스트 아메리칸 에로티카(Best American Eerotica Series)>를 편집하며 여성의 성적 상상력을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글쓰기에 그치지 않고 펜트하우스 포럼의 첫 페미니스트 포르노 비평가로 활동하며 콘텐츠의 방향을 제시했고, 영화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서 에로틱 영화 제작 산업의 윤리적 기준을 세웠다.

수지 브라이트는 섹스 포지티브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섹스 포티지브 페미니즘이란 성을 억압의 구조로만 보지 않고, 성적 표현과 실천 속에 주체성과 해방의 가능성을 보는 페미니즘의 흐름으로, 1980년대 미국의 페미니스트 포르노 논쟁 속에서 등장했다.

 

여성의 성적 욕망과 자유, 그리고 해방

수지 브라이트가 여성의 성적 욕망, 특히 여성 간 성적 즐거움을 공론화한 지 40여 년, 우리 사회는 변화를 경험했다. 여성의 성적 주체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졌고, 성교육과 성 건강에 대한 접근도 개방적으로 변화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오늘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여전히 검열, 편견, 금기와 충돌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의 성적 표현은 제재를 받고, 직장과 일상에서 여성의 성적 자율성은 도덕적 잣대로 평가된다. LGBTQ+ 커뮤니티 내에서도 레즈비언은 여전히 비가시화되고 이중적 소외를 겪고 있다.

수지 브라이트의 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업적이 아니다. 그가 제기한 질문들-왜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숨겨야 하는가, 누가 여성의 성적 즐거움을 정의할 수 있는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메시지는 모든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인정하라고 외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차례이다. 수지 브라이트가 열어 놓은 문을 더 넓게 열고, 그가 시작한 대화를 이어가며, 성적 자유와 해방의 서사를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2025년 6월, 56번째 프라이드 먼스를 기념하며.

  • 에디터
    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참고
    린 코멜라 저·조은혜 역, <바이브레이터의 나라>(오월의 봄, 2022)
  • 이미지
    Amazon, Open Library, Shutterstock, S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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