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주년을 맞은 2026 상하이 API 엑스포 (Shanghai International Adult Products Industry Expo, 이하 ‘성인용품 박람회’)가 지난달 열렸습니다. 당연히 렛허도 다녀왔죠. 단순한 신제품 리뷰를 넘어 성인용품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지 올해 성인용품 박람회에서 읽은 네 가지 흐름을 정리해 봅니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섹스토이를 지정 성별에 따라 ‘여성용’ ‘남성용’으로 구분합니다. 섹스토이 특성 상, 일부 제품은 지정 성별의 신체에 최적화된 방식의 오르가슴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TREND 1. 글로벌 브랜드의 축소와 약진하는 제조사
올해 성인용품 박람회의 글로벌 브랜드의 존재감이 예년 대비 줄어들면서 OEM·ODM을 주력으로 하는 제조사 부스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졌습니다. 이는 산업 내 비용 대비 효율을 고려한 결과로 분석돼요. B2B 비즈니스 성격이 강한 엑스포의 특성상, 기존 브랜드들은 전시장에 막대한 리소스를 투입하기보다 자사몰(DTC)이나 SNS 등 소비자 직접 판매 채널에 집중하는 추세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바이어들의 수요가 달라졌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완제품을 수입하기보다 자체 브랜드(PB)를 론칭하려는 니즈가 커진 것이죠. 결과적으로 성인용품 시장은 기획 및 제조 역량을 갖춘 공급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기존 브랜드의 역할은 제품 생산 자체보다 콘셉트와 스토리를 설계하는 마케팅 주체로 이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TREND 2. 기능보다 ‘캐릭터’,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친근함
이번 성인용품 박람회에서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은 ‘캐릭터 마케팅’의 전면화입니다. 직관적인 기능 설명 대신, 명확한 세계관을 가진 마스코트를 내세운 부스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제품을 직접적으로 강조하기보다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상 콘텐츠 속에 제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성인용품 소비에 따르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되는데요. 최근 아시아 시장에서 확산된 키덜트·아트토이 소비 문화와 맞물려 성인용품을 ‘은밀하게 숨기는 물건’에서 ‘취향에 맞는 귀여운 오브젝트’로 포지셔닝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어요.
TREND 3. 자극 극대화에서 ‘상호 연결’로 진화하는 인터페이스
지난해 성인용품 업계에서 화제가 된 기술 중 하나는 위바이브의 햅틱 스퀴즈 리모트 컨트롤이었어요. 버튼 대신 리모컨의 에어 포켓을 꾹 쥐는 것만으로 토이 본체를 컨트롤함은 물론, 동일한 진동이 리모컨에서도 느껴지는 방식이었는데요. 손의 감각이 파트너에게 전달되는 것, 즉 ‘내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느낀다’는 발상이 전 세계 커플 사용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죠.
올해 성인용품 박람회에는 이 발상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후속 기술들이 등장했는데요. 토이 특정 부위에 센서를 내장해 그 부분을 손으로 어루만지면 진동이 작동하는 스마트 스퀴즈 제품들이 주인공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리모컨이 아니라 제품과 제품을 블루투스로 연결한 형태였는데요. 메인 제품의 센서 부위를 꾹 누르면, 연결된 서브 제품이 동시에 진동하는 방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같은 기술은 성인용품이 단방향 자극에서 쌍방향 ‘연결’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이제 성인용품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개인의 쾌감 극대화’에서 ‘파트너 간의 감각 공유와 상호 작용’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죠.

TREND 4. 석션 키스의 부활, 디자인과 UX로 차별화
여성용 토이 카테고리에서는 기술적 혁신보다는 기존 기술의 디테일한 튜닝과 디자인 차별화가 돋보였습니다. 이미 대중화된 공기 흡입 방식보다 혀의 움직임을 모사한 석션 키스 기능의 제품을 메인으로 내세운 업체들이 많았어요.
물론 석션 키스 기능의 제품은 이미 스테디셀러인 만큼 업체들의 경쟁력은 외형 디자인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였는데요. 여기에도 하나의 유행이 엿보였어요. 화장품 패키지를 연상케 하는 캡(뚜껑) 디자인, 파우치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형태 등 노출 시의 위화감을 최소화한 제품들이 주를 이뤘거든요. 이미 하드웨어 기능이 상향 평준화된 시장에서 ‘들키고 싶지 않은’ 소비자의 심리를 반영한 결과로 보입니다.
K-섹슈얼 웰니스의 기회와 과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시장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제품들은 여전히 서구권이나 중국의 신체 데이터베이스와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소비자의 실제 사용 경험은 글로벌 데이터와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죠. 이 간극을 파고들어 한국 소비자의 데이터와 정서에 맞는 디자인, 콘텐츠를 결합할 수 있다면, K-섹슈얼 웰니스 역시 단순 유통을 넘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텐데요. 렛허는 이번 성인용품 박람회 현장에 직접 부스를 내고 글로벌 바이어와 소비자들을 만난 한국 브랜드 관계자들을 만나 K-섹슈얼 웰니스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국 브랜드와의 인터뷰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집니다.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영상손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