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하고 많은 신체 부위 중 왜 하필 배가 아프다고 했을까? 현대 의학은 이를 두고 대장이 스트레스를 감지할 수 있는 ‘생각하는 장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즘 부동산 뉴스만 보면 설사를 해요.”
“회의 시간이 다가오면 배가 아파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화장실을 못 가요.”
“새로운 장소에 가면 화장실 위치부터 확인해요.”
조금만 긴장하면 배가 아프고, 속이 부글부글 끓고, 설사나 변비가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한 일상이 반복된다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일 수 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이름 그대로 대장이 과민하다는 의미다. 미리 오해를 차단하자면 성격이 예민해서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 불규칙한 식습관, 스트레스, 대장 내 균의 불균형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럼 왜 긴장하거나 특정 상황에서 복통이나 각종 장 트러블이 나타나는 걸까?
대장은 이른바 ‘생각하는 장기’로 우리 몸에 좋고 나쁜 것을 스스로 인지해 흡수하고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음식물이 들어오면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영양분을 흡수한 다음 찌꺼기는 대변으로 배출시킨다. 만약 음식에 바이러스가 있는 등 건강에 유해하다면 뇌가 먹어도 좋다고 허락했더라도 대장은 흡수하지 않고 설사로 내보낸다. 이렇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자율신경계가 대장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자율신경계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특정 상황에서 복통이 일어나거나 설사 등을 하는 건 자율신경계의 이상에 대장이 가장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 질투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배가 아픈 것도 이 때문이다.
변비도 과민성대장증후군의 한 가지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하면 대부분 반복되는 설사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복통, 가스, 불규칙한 배변 습관, 변비, 설사 등 모든 대장 증상을 총칭한다. 일반적으로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가스형
배에서 부글부글 소리가 나고 잦은방귀로 일상에 지장을 받는다. 가스가 배에 가득 차 살이 찐 것처럼 느껴지고, 복통이 있다. 또 바지 사이즈가 작아진 느낌이 들지만 가스가 배출되면 다시 원래 사이즈로 돌아온다.
설사형
주 3회 이상 설사 또는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복통과 함께 갑작스러운 설사를 한다.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더라도 아침에 일어난 직후 설사를 하거나 식사 후에 하는 경우도 많다. 배변을 하면 복통이 좀 줄지만 반복적으로 복통과 설사가 있어 피로감을 느낀다.
변비형
변비형은 증상이 매우 다양하다. 보통 주 2회 이하로 화장실을 가는 사람이 많다. 배변 횟수는 정상적이더라도 단단하고 덩어리진 대변을 힘들게 보거나 대변이 가늘고, 양이 적은 사람도 있다. 배변 시 과도하게 힘을 주고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이 긴 것도 특징이다.
혼합형
설사와 변비가 교대로 나타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주기가 매우 불규칙한 것이 일반적이다.
과민성대장증후군 자가 진단해보기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증상은 있지만 검사를 통해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기 어려워 흔히 기능성 장애, 신경성 질환으로 불린다. 원인 또한 너무나 다양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진단도 쉽지 않다. 설사를 자주 하는 경우 장염으로 오인하기도 하고 복통으로 인해 대장암을 걱정하기도 한다. 다음 중 2가지 이상의 증상이 있다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일 수 있다.
✓ 대장에 특별한 질환이 없다
대장내시경, 혈액 검사 등 대장 검사에서 이상이나 염증 등이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어도 대장은 정상인과 차이가 없다.
✓ 최근 3개월간 주 1회 이상 반복적인 복통이 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복통 유무가 중요하다. 복통이 없다면 일시적인 장 트러블일 수 있다. 복통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콕콕 쑤시듯 아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르르 아프다고 한다. 또한 복통을 느끼는 부위도 제각각이다.
✓ 복통이 있으면서 배변 횟수나 대변 굳기에 변화가 있다
복통을 수반하는 설사 또는 토끼 똥 같은 변을 보고, 배변하면 복통이 줄어든다.
과민성 대장인을 위한 생활 습관 5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증상은 있지만 신체적 이상은 없어 치료하기 어려운 생활 습관 질환으로 꼽힌다. 그만큼 생활 전반을 세심하게 관리해야만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다. 설사나 변비 등 사람마다 증상은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도움되는 생활 습관 5가지.
씹는 횟수를 두 배 늘려서 천천히 먹기
꼭꼭 오래 씹어 먹는 것만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단 소화 효소가 충분히 분비돼 설사와 변비를 예방한다. 또 포만감이 커져 과식을 막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음식과 함께 들어오는 공기 섭취를 줄여 가스 발생을 완화한다.
공복 시간은 짧게 갖기
규칙적인 식사는 원활한 배변 활동의 기초를 쌓는 일이다. 공복 시간이 길수록, 식사를 건너뛸수록 소화 운동이 무뎌져 변비가 생길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조금씩 자주 먹는 게 좋다.
1시간에 1회 일어나 움직이기
오래 앉아 있는 것만큼 대장 운동을 방해하는 것도 없다. 최소 1시간에 1회는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주면 좋다. 또 30분~1시간 규칙적으로 매일 걸으면 변비, 복부 팽만, 가스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충분한 수면 시간 갖기
질 좋은 수면은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몸과 마음에 안정을 준다. 과민성대장증후군 증상이 심하다면 수면 시간을 8시간 이상 갖도록 노력하자.
하루에 심호흡 5번 하기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내뱉는 한숨이 실제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한숨은 신체 방어기제 중 하나로, 긴장된 몸을 이완시켜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부르는 코르티솔 분비를 줄여준다. 또 몸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혈액순환을 돕고 장 운동도 촉진시킨다.
이승화
성남시의료원 가정의학과 과장
성남시의료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자 대한가정의학회 내시경특별위원회 간사로, 어려운 건강 정보와 의학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의학 전문 포털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친절한 가정의학과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대한가정의학회 학술∙법제∙보험위원인 동시에 대한통합암학회 학술이사, 한국영양의학회 간행이사로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 에디터서희라 (seohr@lether.co.kr)
- 디자인박솔미
- 사진언스플래쉬
- 자문이승화(성남시의료원 가정의학과 과장/대한가정의학회 내시경특별위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