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프라이드 먼스를 맞아 렛허도 제26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부끄럽지만, 에디터는 이번에 처음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경험했는데요. 그간 극도의 내향형 집순이란 이유로 온라인에서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접했던 과거가 아쉬울 정도로 즐겁고 유익하며, 한편으로 뭉클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렛허의 첫 번째 서울퀴어문화축제 방문기, 들어볼래요?
2025년 6월 14일, 문 밖을 나서자마자 전일 비 소식을 알렸던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햇빛 쨍쨍히 내리쬐는 맑은 하늘을 마주했습니다. 마치 하늘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응원하는 것처럼 말이죠. 부스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한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요. 무지개 빛 반짝이는 깃발들이 펄럭이는 아래 우리 사회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다양성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이벤트 부스들을 즐기고 있었어요.
도착하자마자 취재를 위해 프레스 카드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성소수자를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표현, ‘성적 취향’ 등 잘못된 개념의 용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야기하는 표현의 사용을 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안내도 받았죠. 이는 인권보도준칙 제8장 성적 소수자 인권 조항에 포함된 내용인데요.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이를 다시 한번 고지해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새삼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70여 개의 부스가 열렸습니다. 성소수자 단체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대사관,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 그리고 여러 브랜드에서 부스를 내고 재미있는 이벤트들을 진행했죠. 그중에서도 에디터의 눈에 띈 구역은 종교 부스였는데요. 일부 종교인이 교리를 핑계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인정하지 않는 탓에 ‘종교인’과 ‘성소수자’를 마치 나란히 설 수 없는 존재들로 여기는 인식이 강한 가운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천주교, 개신교, 불교에 몸담은 신앙인이 운영하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만나 반가웠답니다. 한국 천주교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 알파 오메가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뜻을 담아 수녀들이 직접 만든 묵주를, 성소수자 불교모임 불반에서는 스님들이 엮은 오색 팔찌를 이벤트 사은품으로 들고 나와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죠.
반가운 얼굴도 만났어요. 바로 몸 다양성을 지향하는 스타일 편집숍 66100(육육일공공)의 부스를 발견한 것이죠. 66100을 이끄는 CEO이자 메인 모델, 스타일링 컨설턴트인 김지양 대표가 부스에 직접 나와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었어요. 66100의 부스에서는 ‘몸과 옷’을 주제로 89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단행본 <몸과 옷>도 만날 수 있었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나의 몸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때문에 나를 표현하는 수단인 옷에도 영향을 받는 현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몸과 옷>은 존재의 인정을 획득하고자 끊임없이 싸우는 LGBTQ+ 커뮤니티의 역사와도 닮아 있었죠. 과연 덕분에 66100 부스에도 많은 시민이 모였답니다.
오후 2시부터는 환영 무대의 시간이었습니다. ‘스탠드업퀴미디언’으로 불리는 배우 겸 창작자 안세희, 싱어송라이터 겸 드랙퀸이자 활동가이기도 한 허리케인 김치의 사회와 수어 및 문자 통역이 동시에 진행되는 아래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인사로 시작됐는데요. 그중에서도 한국퀴어영화제집행위원회의 신효진 집행위원장이 서울퀴어문화축제와 함께 진행되는 한국퀴어영화제 일정을 소개하면서 장소 대관 논란을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당초 올해 한국퀴어영화제는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내 위치한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작년 한국퀴어영화제가 열린 곳이기도 해요. 그런데 장소 대관 협의가 마무리될 즈음 돌연 아트하우스 모모로부터 대관 거절을 통보받았다고요. 이에 관해 아트하우스 모모 측은 개신교 기반의 미션스쿨로서 이화여대 졸업생, 교내 구성원들로부터 지속적인 항의와 민원을 받았다고 설명했지만, 동시에 대학원생노동조합 및 재학생 일부는 아트하우스 모모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신효진 집행위원장은 이 과정을 짧게 설명하며 아쉬움을 표했죠.
조직위원회의 인사가 끝나고 이어진 첫 번째 무대는 여성 밴드 고스턴(Go Straight N’ Turn Right)이 주인공이었는데요. 고스턴은 이화여대 출신의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예요. 2023년부터 올해로 3회째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무대를 책임져준 밴드이기도 하죠. 고스턴의 신나는 음악에 맞춰 관객들의 손에 들린 무지개 깃발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다 보니 ‘이화여대 졸업생, 교내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항의와 민원’을 이유로 한국퀴어영화제 대관을 거부한 아트하우스 모모의 입장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날 서울퀴어문화축제 무대에는 전국여성농민회 정영이 회장이 올라 연대 발언을 했는데요. 지난해 겨울, 서울 남태령에서 진행됐던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에 많은 성소수자가 함께해 지독한 한파와 고립을 견뎌냈던 인연이 있습니다. 정영이 회장은 “남태령에서 벌어진 농민들의 투쟁에 (성소수자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와 줬다. 농민들 곁에 성소수자 친구들이 함께해 줬다”며 고마움을 표했어요. 그러면서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가 주를 이루는 농촌 사회에서 여성 농민 역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세상은 우리 같은 소수자, 차별받는 사람들이 바꾼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여성 농민과 농민들도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응원했어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세상은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국가 차원의 움직임도 수반되어야 하죠.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불참을 선언해 잠시 논란이 일었으나,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앨라이(Ally, 자신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과 무관하게 차별에 반대하고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사람) 모임’을 만들어 참석하며 서울퀴어문화축제와 뜻을 함께했습니다. 또한, 올해는 질병관리청이 중앙행정기관으로는 처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공식 부스를 내고 참여해 의미를 더했어요. 질병관리청 부스에서는 성별과 성적 지향을 떠나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서라면 모두가 필수로 알아야 할 HIV 예방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참여형 이벤트가 진행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앞으로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해요.
한편, 환영 무대가 마무리된 후에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핵심,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됐습니다. 모두가 발걸음을 맞춰 행진하며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했답니다. 마지막 축하 공연까지, 맑은 하늘과 함께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 행사도 성황리에 막을 내렸어요.
서울퀴어퍼레이드는 끝났지만,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계속됩니다.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슬로건처럼, 온오프라인에서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가 순차 진행될 예정이에요.
우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SNS에 개제하는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가 오는 22일까지 진행되는데요. 팬데믹으로 대면 만남이 불가능했던 2020년 시작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는 올해 마지막으로 진행되니 꼭 참여해 보세요.
성소수자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성소수자 친화적인 제품, 서비스, 콘텐츠, 그리고 이를 만드는 창작자와 브랜드를 소개하는 레인보우 굿즈전도 오는 22일까지 온라인 마켓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상계동 더숲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한국퀴어영화제를 통해서는 퀴어의 삶을 다룬 다양한 영화를 감상하고 GV, 씨네토크 등의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 공식 홈페이지에서 상영 시간표를 확인하고 즐겨 보세요.
- 에디터손예지 (yeyegee@lether.co.kr)
- 사진손예지